
긍휼이란 무엇인가요?
욥기 9장 - 나는 온전하다마는(41) (찬송가 41장 네 영혼아 주 찬양하여라) 디모데후서 3:16-17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 되어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욥기 3-31장까지의 말씀은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축복의 말씀으로 인용하기는 어렵지만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옳게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함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3:14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욥과 세 친구 엘리후와 빌닷과 소발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인은 복주시고 악인은 벌을 주신다 ’는 율법의 수건으로 눈을 덮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죽을 죄인이지만 나를 용서하시고 살리시기 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의입니다 우리 눈을 가리는 수건이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지기를 원합니다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빌닷이 ‘네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네 아이들이 모두 죽었고 너도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라며 ‘하나님 앞에 의로운 인생이 없다 ’하는 빌닷의 말에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빌닷이나 욥이나 같이 ‘하나님은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악인을 벌하신다 ’는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욥의 입장에서는 이런 고난을 당할 만큼의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와 빌닷의 눈에는 욥의 말이 자신이 죄가 없음에도 하나님께서 애매히 고난을 주셨으니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믿지 않는 모순이 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공의와 절대성을 부정하지 않고 늘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과 세 친구가 모르고 있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배우고 알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는 말입니다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앞으로 지나셔도 그분을 보지 못하고 그분이 일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 뜻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떠나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양’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를 넘어 ‘도망간 양’인 것 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도망간 양은 어디에도 목자를 만날 수 없고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원하시는 대로 빼앗으시더라도 누구도 하나님을 막지 못하고 왜 그렇게 하시는 지 묻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는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기록 되대로 하시는 분이십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나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도 구원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욥은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불러도 관심을 가지고 그분이 듣기라도 하시는지 모르겠다 ’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에게 관심이 있으실까요? 욥은 하나님께서 내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애매히 고난을 주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가난하고, 병으로 아프고, 외롭고, 따돌림 당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나와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것은 믿는다 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왜 지금 이 고난에 나를 버려두시는 것일까요? 사탄은 끝임 없이 우리의 귀에 대고 “하나님은 너 따위에 관심 없다 너는 우주에 티끌 같은 존재이다 이 고난에서 너는 극복하지 못한다 너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너 같은 존재를 돌아보지 않으신다 ”라고 자책하게 하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속으면 안 됩니다 자녀에게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주며 나의 생명처럼 사랑하고 정성을 다하여도 자녀는 부모에게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요구합니다 이는 어린아이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있어서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고 우리의 소원을 구합니다 세상의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을 구하고 세상의 것을 복이라고 부러워하며 간절히 구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원하는 것을 욕심으로 구합니다 우리가 구하고 원하는 것이 생명인지 사망인지 알지 못하고 구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은 나를 버렸다 ’고 하는 것입니다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욥은 아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자이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땅의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구원 죄 사함)을 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사야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믿음은 회개하고 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어찌 부모가 그 낳은 자식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말은 ‘히 라힘(Rahim)’입니다 ‘라힘’은 여성의 ‘자궁’을 말합니다 즉 ‘긍휼이란’ ‘자신의 자궁에서 난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긍휼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결코 자녀를 징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어찌 자녀를 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지만 하나님아버지는 인자하시고 공의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신 분으로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엄중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는 구원의 하나님 긍휼과 용서의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을 통하여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오해와 우리의 완악함을 깨우치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긍휼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내가 원하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것 주시는 하나님 곧 하나님을 아는 것과 구원과 죄 사함을 주시는 긍휼의 하나님 은혜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스탄불중앙교회(Beylikdüzü Kilisesi) #욥기9장 #선교 #날마다예배 #날마다찬양 #매일묵상 #웨이처치 #날마다말씀 #이스탄불 #경산중앙교회 #매일예배 #성경공부 #욥기 #shorts #의인욥 #리워야단 #사람이무엇이기에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 #네시작은미약하였으나네나중은심히창대하리라 #네시작은미약하였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