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거라 사띠를 붓다의 유언을 아십니까 : 우 사사나 마하보디 선원장 집중수행 수행법문

잊지말거라 사띠를 붓다의 유언을 아십니까 : 우 사사나 마하보디 선원장 집중수행 수행법문

0815 수행법문 00 편안함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편안함도 일어난 것입니다 대상이 사라짐으로써 편안함과 보는 힘을 길러 이해해서 사라지는 편안함이 있습니다 후자가 힘있는 편안함입니다 다른 말로 지복, 수카(행복)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수행은 후자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지켜보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지켜보는 마음에 지혜를 들어앉혀서 지혜로 이해하는 편안함을 지향합니다 그것은 벗어남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출리, 이욕이라고도 합니다 그런 벗어남의 지혜는 정견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바른 생각, 바른 사띠와 함께 팔정도의 완성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대상이 사라짐의 편안함도 자꾸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취착하면 안 됩니다 거기에 사띠가 없으면 편안함에 안주하게 됩니다 대상이 사라지는 편안함은 그러기가 쉽습니다 편안함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것을 자꾸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통찰수행의 키 포인트입니다 보는 쪽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보는 힘이 바로 지켜보는 마음입니다 거기에서 이해를 자꾸 증장시킵니다 그것이 벗어남의 지혜가 됩니다 그 이해함의 지혜가 진짜 편안함입니다 그래서 정견을 이해하는 앎이라고도 합니다 그 이해는 법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견은 그 법과의 일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볼 때마다 대상이 법이니까 번뇌가 어디에 들어오겠습니까? 있던 번뇌도, 과거, 현재, 미래의 번뇌도 사라집니다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떼자니아 사야도는, 수행은 왜 하는가?, 사띠는 왜 두는가? 하고 묻습니다 ‘알기 위해서,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답하십니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가 일어나니 고멸이 된다’, ‘두카를 보는 자, 두카의 끝을 본다’ 이런 말들이 다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 것까지 다 이해해야 합니다 지혜의 특성은 양쪽을 다 보는 것입니다 보는 쪽도 아는 쪽도 다 봅니다 보는 마음, 아는 마음을 다 보는 마음이 지켜보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보는 마음, 아는 마음, 지켜보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사띠입니다 이것이 삼마사띠입니다 보통의 사띠가 바뀐 것입니다 그런 다재다능한 지혜를 능숙한 알아차림, 할 줄 아는 지혜라고도 하는데 지혜는 무량하다, 숫자로 한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대상에 집중하면 안 됩니다 집중에는 로바(탐심)와 도사(진심)가 들어있습니다 그 많은 대상을 간과하니 아깝습니다 그렇게 어떻게 무량광의 지혜를 얻겠습니까? 어떻게 일체지를 얻겠습니까? ‘잊지 말거라 사띠를’이라는 부처님의 유언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띠의 역할, 기능, 임무, 위치, 이런 것들을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 한 마디도 입을 못 여는 수도 있습니다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사띠를 모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애절하고 간절하게 그 잊지 말거라 사띠가 너를 구해줄 것이다, 그게 중생구제용입니다 범부들의 모하의 마음이 중생입니다 모하는 탐 진을 달고 사니 탐 진 치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존재의 두카로서 일어납니다 존재를 벗어나는 법계의 三 事和合은 뭘까요? 계정혜 삼학과 사띠 삼마디 위리야, 또 불법승 삼보, 이것들이 다 삼사화합입니다 마음은 항상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마음의 성품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통사람들의 마음도 일어나고 사라지고요, 수행하는 사띠도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통사람은 그 사라짐을 모릅니다 그래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행하는 사띠는 그 사라짐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키우는 겁니다 그것이 사띠입니다 존재를 나투는 그 苦를, 생노병사를 그렇게 벗어나는 것입니다 법계에 사라지면서 편안함을 증장시켜서 벗어나서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의 삼사화합이 무상 고 무아입니다 그래서 삼특상, 삼법인이라고 했습니다 괴로운데 왜 법일까요? 수행자들은 왜 삼법인을 보려고 할까요? 모하도 모하의 자연적인 성품을 알아야 합니다 모하의 성품을 깨우치면 그 때 모하를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 대상입니다 업도, 모하도, 빤냣띠(관념)도 낄레사(번뇌)도 알아야 할 대상입니다 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모두 알아야 할 대상입니다 보고 말면 한 가지에 치우친 것입니다 이해할 때까지 봐야 합니다 사띠는 보고 알고의 더블클릭입니다 보는 쪽만 보면 안 됩니다 보는 쪽을 원인으로 해서 아는 것이 생겨서 아는 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양쪽을 다 이해하게 됩니다 양쪽을 알려고 지켜보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해하지 않으면 한 쪽으로 치우친 것입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양쪽을 다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온도 벗어나야할, 알아야 할 대상입니다 모하(어리석음)는 대상 자체를 감추고 가립니다 지혜는 대상의 자연적인 성품을 이해합니다 사띠에는 통찰의 종자,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띠를 잘 관리하면서 키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사띠가 사라진 자리에 모하의 편안함이 남습니다 사띠의 힘이 좋아서 사띠 삼마디로 인해 대상이 사라질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모하의 편안함과는 좀 다를 수 있습니다 편안함 마저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모하로 빠져 버립니다 아상은 깨달음과 천적관계입니다 수행 자체도 못 하게 합니다 모든 형성된 것은 無常하다 그것은 苦이고 無我이기도 합니다 삼법인은 빠라맛따(실재)의 특성입니다 지혜의 특성입니다 법 있는 사람을 참다운 사람이라고 하고, 덕 있는 사람을 참다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알아듣게 하려고 ‘사람’을 붙입니다 그것은 바로 법을 말합니다 ------------------------- 마하보디 선원 경주시 내남면 박달로 369-95 054)746-9750 월례 수행법회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월례 집중수행 매월 넷째 주 금요일 오후 5시 입제 월요일 오전 11시 회향(3박 4일) 수행 통참 문의 정혜심 총무 010-3425-7027 혜주 까삐야 010-9896-5982 함월 재가운영회장 010-3708-4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