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막전막후] 여야, 선거법 개정안 처리 놓고 힘겨루기 팽팽 / 연합뉴스TV (YonhapnewsTV)
[여의도 막전막후] 여야, 선거법 개정안 처리 놓고 힘겨루기 팽팽 [출연 : 정영빈 연합뉴스TV 정치부 기자] [앵커] 여의도 정치권의 모습을 전해드리는 여의도 막전막후 시간입니다 국회를 출입하고 있는 정치부 정영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뉴스를 준비했나요? [기자] 네, 국회에서는 현재 연동형 비례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 개편안 처리를 놓고 여야 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번 총선 때만 되면 보수와 진보라는 양당 구조에도 불구하고 제3지대, 제3세력을 표방한 신당은 어김없이 탄생했는데요 특히나 이번에는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될 경우 원내에 진출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유로 신당 창당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역대 총선에서 등장했던 제3정당이라는 주제로 준비해봤습니다 [앵커] 제3정당 하면 가장 먼저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했던 통일국민당이 떠오르는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과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1992년 대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하고 그해 2월 통일국민당을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정 회장은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유력 대선후보 사이를 파고들었는데요 성공한 기업가 이미지에다가 당시 민자당, 민주당 공천에서 떨어진 기성 정치인들을 흡수하며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통일국민당은 3김 정치에 싫증을 내던 젊은 층의 호응을 받았는데요 창당 한 달 만에 실시된 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은 지역구 24석에 비례 7석 등 총 31석을 확보하며 원내 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단숨에 제3당으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정 회장이라는 정당의 오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정 회장이 그해 말 대선에 출마해 3위에 그치면서 통일국민당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데요 이듬해 2월 정 회장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국민당 당사를 폐쇄합니다 이에 통일국민당은 군소정당이던 신정치개혁당과 합당해 신민당을 창당하면서 2년 6개월 만에 사라지게 됩니다 [앵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창당했던 자유민주연합, 자민련도 우리 정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3당이죠? [기자] 네, 그렇습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1995년 창당한 자민련은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제3당으로 꼽힙니다 자민련은 11년 동안이나 유지됐는데 우리 정치사에서 제3당 중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자민련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짚어보면요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며 여당이던 민자당에는 변화의 바람을 불기 시작합니다 당시 민자당은 3당 합당으로 민정계와 민주계, 공화계 등 3개 계파로 나뉘어 있었는데, 민주계의 젊은 인사들이 당시 김종필 대표는 개혁정권에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 인사라며 퇴진을 압박한 것입니다 결국 갈등을 빚던 김 전 총리는 1995년 자신을 따르는 의원들을 데리고 민자당을 탈당해 자민련을 창당했습니다 [앵커] 당시 자민련은 창당하자마자 지방선거와 뒤이은 총선에서 돌풍을 불러일으켰죠? [기자] 네, 자민련은 창당 직후 진행된 1995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을 석권하는 한편 강원도지사도 배출했습니다 당시 주된 선거전략은 다른 지역에서 충청도를 핫바지로 보고 있다는 이른바 핫바지론이었는데요 충청권 맹주이던 김 전 총리의 이 같은 선거전략은 이듬해 총선에서도 유효했습니다 자민련은 충청권을 석권하고 강원도와 수도권까지 합쳐 50석을 획득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이어 제3당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는데요 97년 대선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을 조건으로 DJP연합을 구성해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 체제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민련은 2000년 총선에서 참패하며 17석을 얻는데 그쳐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는데요 새천년민주당의 의원 꿔주기로 원내교섭단체는 유지했지만 내각제 개헌과 대북 문제 등을 놓고 새천년민주당과 갈등하다가 결별했고 이후 2004년 총선에서는 충남지역 4석에 그친 끝에 2006년 4월 ▣ 연합뉴스TV 유튜브 채널 구독 ▣ 대한민국 뉴스의 시작 연합뉴스TV / Yonhap News 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