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샹ㄴ,, + 노답 영조 콜라보 '숙의 문씨' #영조 #숙의문씨 #사도세자](https://poortechguy.com/image/9L5vmIO0lII.webp)
희대의 샹ㄴ,, + 노답 영조 콜라보 '숙의 문씨' #영조 #숙의문씨 #사도세자
《숙의 문씨》 영조가 임신시킨 며느리의 시녀 '숙의 문씨' 조선 제 21대 국왕 영조는 내로남불 끝판왕이었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후궁 숙의 문씨인데요? 오늘은 영조가 임신시킨 며느리의 시녀, 숙의 문씨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는 출생일은 미상이며, 화령옹주와 화길옹주를 낳았습니다. 원래는 궁인의 신분이었는데, 영조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야사에서는야사가 전해지는데요. 숙의 문씨는 원래 효장세자의 부인이었던 현빈 조씨의 궁인이었는데, 영조 27년인 1751년 음력 11월, 현빈 조씨가 사망하자 그 빈전을 찾던 영조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후 숙의 문씨는 영조 29년인 1753년 음력 2월 8일, 정4품 소원에 책봉되고, 영조 47년인 1771년에는 종2품 숙의로 진봉되었습니다 숙의 문씨에 대해서는 재밌는 야사가 더 있는데요? "사가에서 몰래 사내아이를 들여와 왕자라고 속이려 했으나 영의정 이종성에게 발각되어 무산되었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이런 야사를 반영하여 MBC드라마 대왕의 길에서는 숙의 문씨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둘 낳자 외부에서 남의 사내 아기를 몰래 데려 오려고 하는 등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또한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는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와 비슷한 점이 매우 많은데요? 우선은 조선 최악의 임금으로 꼽히는 영조와 인조의 후궁이라는 점 그리고 임금의 총애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굴었으며 뒷배가 되어주던 왕이 승하하자마자, 그동안의 악행이 폭로되어 사사당하고 자식들도 연좌제로 인해 작위를 빼앗길 뻔했던 것 등이 매우 닮았습니다. 하지만 든든한 가문이나 뒷배가 없던 숙의 문씨는 영조 사후 바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6년 음력 3월 30일, 숙의 문씨의 작위를 삭탈하여 사저로 내쫓았고, 문씨와 함께 일을 모의한 문씨의 오빠 문성국은 노비로 만들었으며, 문씨의 어머니는 제주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숙의 문씨는 작위를 삭탈 당했기 때문에 문녀(文女)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정조 1권, 즉위년(1776 병신 / 청 건륭 41년) 3월 30일(신축) 2번째 기사 오늘은 국상 중에 영조가 임신시킨 며느리의 시녀 숙의 문씨에 대해 정리해 보았는데요? 내로남불 끝판왕, 호불호가 매우 심했던 영조의 사랑을 받았으며, 귀인 조씨 소용 조씨와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은 여인인 것 같습니다. 오늘 영상이 즐거우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댓글 부탁드립니다. 영상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숙의문씨 #영조 #역사이야기 #사도 #사도세자 #혜경궁홍씨 #소용조씨 #조선시대 #악녀 #후궁 #귀인조씨 #조귀인 #비밀의문 #옷소매붉은끝동 #조선시대후궁 #역사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