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_ 글 최순덕(낭송 이온겸)

겨울 숲_ 글 최순덕(낭송 이온겸)

겨울 숲 글 최순덕 낭송 이온겸 Music by 랩소디 겨울 숲 최순덕 봄의 앞에 겨울을 놓는다 사계절의 순서를 겨울 봄 여름 가을의 순서로 다시 줄을 세워본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지구의 사계절은 어차피 처음과 꼬리가 서로 물린 채 순환하고 있으니까 딱히 어느 계절을 처음이라 여겨도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지 않던가 죽은 듯 찬바람 속에 서 있는 나목의 밑둥치에서도 생명의 흐름은 멈추지 않고, 꽁꽁 언 암흑의 대지에서도 생명의 기운을 모으고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으니 겨울이 마지막 계절이 아니고 처음의 계절로 맞을 것도 같다 말하자면 겨울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산모의 뱃속과도 같은 것이다 어미 뱃속에서 태어날 준비를 부지런히 하고 있으니까 자연의 이치를 따져도 봄보다 겨울이 먼저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어느 계절을 막론하고 숲은 저마다의 얼굴로 기쁨을 준다 봄의 숲에는 터져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왕성하여 좋다 여름의 숲은 절정의 생명력과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시원함이 있어서 좋다 가을의 숲은 단풍의 환희와 이별의 애잔함이 섞여 사색의 시간을 주어서 좋다 겨울의 숲은 떠나보내고 비우며 한 생을 마무리 하는 매듭이 있어서 또한 좋다 생명이 움트는 봄이 있어야 여름의 녹음이 있고 여름을 지나야 가을의 단풍과 낙엽이 있는 것이다 가을을 지나야 숲도 정리하고 휴식하며 또 다른 생을 준비를 할 수 있는 겨울을 맞는 것이 아닌가 추운 겨울이 있어야 준비 된 봄이 깨어나는 것인 만큼 계절의 선두는 겨울이라고 말하고 싶다 계절의 순서와 관계없이 나는 겨울 숲을 편애함을 슬그머니 고백한다 겨울의 숲은 넉넉하고 포근하다 푸른 생명으로 빡빡했던 숲이 생존을 위해 손을 놓아버리는 비움의 시간에 서자 오히려 넉넉해진 것이 많아졌다 앙상한 가지 사이로 찾아드는 햇살이 넉넉해졌다 따스한 햇살이 속살 깊이 드리운 양지바른 겨울 숲은 멈추어 앉아 한 숨 낮잠이라도 자고 싶을 정도로 포근하다 빈 가지 무성한 겨울나무의 숲이 이고 있는 하늘이 훤하게 넓어졌다 나뭇잎의 저항이 사라진 바람의 길이 한결 수월해지고 자유로워졌다 초록의 잎에서 열심히 에너지를 생산했던 과업을 잠시 멈추고 달콤한 휴식에 들어간 겨울의 숲은 삶에서 쉬어감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열심히 일하고 그 보상으로 휴가를 떠나는 이의 환희와 기쁨이 겨울의 숲에 깃들어있다 내가 겨울의 숲을 즐겨 찾는 이유다 겨울의 숲에는 나목의 눈물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줄만 알았다 매서운 찬바람을 속절없이 온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나목의 잔가지들이 슬프고 애처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자식들 키우느라 모진 세월 살아오신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이 언제나 나목에 겹쳐져서 더욱 슬펐다 물기 귀한 한 겨울에도 잔가지 끝까지 물기를 올려야 되는 고단한 나목의 겨울이 안쓰러웠다 어머니의 고단한 삶이 겨울의 나목에 걸려있어 언제나 겨울 숲은 눈물이고 그리움이었다 먹거리를 찾아 바닷가를 훑으셨던 어머니의 마지막 유해를 청개구리처럼 산에다 뿌렸었다 저승에서나마 한이 서린 바다를 떠나시라고 흙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짓인지 겨울의 나목은 눈물로 나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하지만 겨울 숲에는 그런 슬픈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바꾸니 슬픔도 기쁨도 흩날리는 한낱 작은 부스러기 같아진다 겨울 숲의 나목에 서려있던 슬픈 그리움도 세월 따라 빛이 바랬다 잘게 바수어져 흙이 된 나뭇잎처럼 이제는 하얗게 부서져버렸다 짙은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야만 얻을 수 있는 영광과 환희를 겨울의 숲은 조용히 가르치고 있다 허리띠 졸라매고 자식 교육에 헌신했던 어머니의 고귀한 사랑이 겨울 숲의 나목에 걸려있는 것이다 지금 형편이 어렵고 살기가 힘들어도 인내하며 살다보면 꽃 피는 봄이 오고 영광의 계절도 온다는 것을 흙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조곤조곤 말씀해 주시는 것 같다 마음의 번민이 일 때 조용히 겨울의 숲을 산책하노라면 어느새 평온을 찾게 된다 아픈 배 어루만져 주시던 어머니의 약손처럼 겨울의 숲은 확실히 치유의 장이다 배경음악 When Snow Falls Down Music by 랩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