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v 한국 - 1994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 (Japan v South Korea - 1994 Asian Youth Championship)](https://poortechguy.com/image/BiU-eLSx2AQ.webp)
일본 v 한국 - 1994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 (Japan v South Korea - 1994 Asian Youth Championship)
Sep 20, 1994 자카르타의 치욕 본디 199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대회는 시리아에서 벌어지게 되어 있었으나 국내 사정으로 개최권을 반납, 한국에서 개최 의지를 보였었다 시리아의 개최 반납은 94년 6월경이었는데, 당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7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의 남북정상회담이 확정된 상태여서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고, 같은 맥락에서 북한 U19팀을 서울로 불러들이기 위한 일환으로 대회 개최도 추진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7월 8일 갑작스런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시계제로의 상황에 빠져들면서 대회 개최가 불투명해졌고, 마침 인도네시아가 강한 의지를 드러내 대회는 90년 이후 4년만에 다시 인도네시아에서 열리게 되었다 북한은 기권 4년전, 결승에서 남북대결이 펼쳐지며 깊은 감동을 선물했던 이 대회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출전국이 10개로 늘어나 팀당 4경기의 조별 예선을 치러야 했는데, 한국은 첫 경기에서 태국을 3-1로 완파하고 서전을 장식했다 당시 이 태국이 좀 희한한데, 한국이 휴식일이었던 1차전에서 일본을 2-0으로 격파하는 이변을 일읕켰던 팀 이 대회는 1975년 8월 1일 이후 출생자만 출전할 수 있는데, 당시 태국에는 후일 71년생으로 밝혀지는 타완 스리판, 73년생으로 밝혀지는 키아티숙 세나무앙 등 확인된 연령 초과 선수만 5-6명에 달했다 태국전 이후 승승장구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한국이었지만 쿠웨이트-바레인과의 2연전에서 시종 고전하다 경기 막판 동점골로 간신히 패배를 면해 1승 2무를 기록한 상태에서 최종전을 맞이한다 태국에게 일격을 당했던 일본은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바레인-쿠웨이트를 모두 2-0으로 완파하며 2승 1패로 조 1위에 오른 상황에서 한국전에 나선다 일본은 비기기만 해도 4강행이 가능했지만 한국은 무조건 승리가 필요했던 상황 쿠웨이트-바레인과의 연속 무승부가 발목을 잡았다 의외로 이 세대가 당시엔 골짜기 취급을 받았지만 안정환-서동원2-이상헌1 3인방을 비롯해 정상남, 변재섭, 박성배 등 후일 K리그에서 활약하는 준척 이상급 인재들이 꽤나 많이 배출되었다 그럼에도, 이 경기는 1990년대 일본 축구에게 추격을 허용한 한국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90년대 대 일본전 4대 치욕 중 하나로 본다 나머지 셋은 1 1993년 월드컵 최종예선 0-1 패 2 1994년 AFC U16 조별리그 0-3 패 3 1999년 올림픽팀 친선경기 1-4 패 특이하게도 바로 윗 연령대인 일본 올림픽팀 감독인 니시노 아키라가 해설을 맡았다 한국에게 유독 엄격했던 사우디 출신 오메르 살레 알-메하나 주심의 판정에 분노한 한국이 일으킨 막판 소요 사태는 한국 축구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목 선발 라인업 일본 (4-4-2): 1-혼다 세이지; 6-야마다 노부히사, 5-타나카 마코토, 13-마츠다 나오키, 3-오모리 켄사쿠; 10-이토 스구루, 7-쿠마가이 코지, 15-나카타 히데토시, 12-야마니시 타카히로; 11-오키 스스무, 9-야스나가 소타로 감독 - 타나카 코지 한국 (1-4-3-2): 1-노수만; 14-서동원2; 15-박경환, 5-이상만, 6-이상헌, 19-김성일; 17-박한동, 8-안정환, 10-정상남; 9-장민석, 11-변재섭 감독 - 원흥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