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 원칙과 2025년의 인간: 인류 초창기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체나 상황에 대처하는 데 우리 두뇌가 서툴다.](https://poortechguy.com/image/EYZY7zNJc2M.webp)
사바나 원칙과 2025년의 인간: 인류 초창기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체나 상황에 대처하는 데 우리 두뇌가 서툴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최첨단 기술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2025년이 된 지금, 인간이 접하는 환경의 변화 속도는 더욱더 가파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이런 급속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 그리고 두뇌가 지닌 ‘기본 설계’는 여전히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주장에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탄생한 개념이 바로 ‘사바나 원칙’이다 사바나 원칙은 우리의 두뇌가 “인류 초창기 환경(주로 아프리카 사바나)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체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디지털 미디어 같은 현대적 산물을 대할 때, 우리의 석기시대 두뇌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진화심리학의 핵심 전제 중 하나는 “뇌 역시 인체의 다른 기관처럼 진화해 왔으며, 특별히 예외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손이나 췌장의 기본적인 형태가 1만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듯이, 뇌의 기본적 기능 또한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다고 본다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서 아프리카 사바나와 기타 지역에서 수백만 년 동안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현재 우리의 몸과 두뇌는 수렵채집에 최적화된 환경을 배경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1만 년 전,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곧이어 대규모 문명이 탄생하면서 인류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생활 방식을 갖게 되었다 도시, 국가, 정부, 문자, 다양한 교통수단과 디지털 통신망 등은 주로 지난 1만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진화론적 시간 척도로 볼 때 1만 년은 매우 짧다 특히 인간은 한 세대에 약 30년이 걸리므로, 1만 년은 대략 300세대 정도에 불과하다 수많은 후손이 태어나고 적응적 특질이 오랜 세월 쌓여야 하는 자연선택 과정에 비하면, 이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달리 말해 우리의 몸과 두뇌가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급격한 환경 변화를 충분히 ‘업데이트’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바나 원칙’이란 말 그대로 우리의 두뇌가 신석기 시대 이후 등장한 대상과 상황을 완벽히 이해하거나 적절히 대처하기 어려워한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TV나 온라인 영상 속 인물, SNS 속 ‘가상 친구’, 실시간 화상통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석기시대의 뇌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이다 초창기 환경에서, 눈앞에 “현실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곧 실제로 살아 있는 개인이었다 반복적으로 만나고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대개 내 편(친구)이었다고 인식하는 것이 훨씬 생존에 유리했다 그러나 TV나 유튜브, SNS 등에서 수없이 반복해 보이는 인물들은 사실 ‘화면 속 영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뇌는 이를 ‘진짜 친구’처럼 여길 수 있다 이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상에서 자주 만나는 인물에게 친근감을 느껴 실제 친구 수가 늘어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심리적 효과를 설명해준다 사바나 원칙은 구체적인 예시로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가 단 음식과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는 심리적 기제는, 과거 수렵채집 사회에서 영양 부족에 시달리기 쉬웠던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적응이었다 열량이 높은 음식을 섭취해야 생존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화와 기술 발전이 진행된 현대에는 거의 언제 어디서나 고칼로리 식품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비만이나 대사질환 같은 문제들이 오히려 생존에 해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남성의 성적 질투 또한 마찬가지다 초창기 환경에서는 ‘부성의 불확실성’을 해결하기 위해 성적 질투심을 느끼고 배우자를 감시하는 행동이 진화적 이점이 되었다 다른 남자의 자식을 기르는 일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큰 손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는 확실하고 다양한 피임 수단과 친자 확인 기술까지 존재한다 따라서 아내의 외도로 인해 ‘남의 아이를 모르는 새 기르게 될 확률’이 크게 줄었음에도, 여전히 남성들은 강렬한 질투심을 느낀다 극단적으로 배우자나 경쟁자를 폭력적으로 통제하다가 법적 처벌을 받아 도리어 자손 번식 기회를 잃는 ‘역효과’까지 생긴다 이는 석기시대에 형성된 심리 기제가 현대의 법·제도·기술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진화가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체감할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처럼 성숙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종에서, 진화는 매우 긴 시간과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을 필요로 한다 초파리는 일주일이면 한 세대가 바뀌지만, 인간은 오랜 시간이 이 필요하다 그만큼 우리의 진화는 더디다 더욱이 지난 1만 년간 인류의 환경 변화는 쉼 없이 가속화되어 왔다 200년 전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의 대부분 사람들은 농업 중심의 삶을 살았지만, 100년 전에는 공장 노동자가 많아졌고, 최근 수십 년 동안에는 서비스·지식 산업이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2025년 현재는 인공지능을 비롯한 초연결 사회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농업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 특질과 산업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특질, 그리고 디지털 경제 시대에 꼭 필요한 특질은 상당히 다르다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환경이 바뀌면, 자연선택이 의미 있는 방향으로 작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결국 인간의 뇌와 몸은 1만 년 전에 마무리된 ‘석기시대 디자인’을 여전히 고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바나 원칙’은 인간의 두뇌가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환경, 즉 인류 초창기 환경과는 전혀 다른 대상이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하기 어려워한다는 진화심리학적 가설이다 이때 ‘인류 초창기 환경’이란 진화심리학에서 흔히 ‘진화적 적응환경’이라고 부르는 시기로, 인간이 수백만 년 동안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다양한 심리적·신체적 특질을 갖추게 된 장소와 시대를 가리킨다 사바나 원칙이 주목하는 핵심은 ‘인간의 뇌가 어디서, 어떤 조건에서 진화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생물학적 구조와 기능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특정한 환경에서 점진적으로 적응된다 인간의 경우, 석기시대부터 수만 년 이상 이어졌던 수렵채집 환경이 바로 뇌를 비롯한 각종 신체 기관이 최적화되어온 무대였다 그런데 불과 1만 년 전 농업혁명 이후, 인류 사회는 무척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달라졌다 도시 국가가 생겨나고, 글쓰기·교통·통신 등 문명이 발달했으며, 최근에는 인터넷과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면서 우리의 뇌가 진화적으로 미처 ‘업데이트’하지 못한 부분이 생겨났다는 것이 사바나 원칙의 골자다 이 원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초기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 인간이 시각적으로 ‘실제처럼 보이는 다른 인간’을 접한다면, 그것은 곧 실제 살아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오랜 사냥 생활 속에서 자주 보게 되는 사람은 대개 같은 무리의 구성원이나 친족이었으므로, 적대적이지 않다면 협력하거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다 이 규칙이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뇌에 내재화되었고,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인간을 친구나 동료로 여기는 경향’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TV, 인터넷, SNS, 가상현실 등 ‘실제로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직접적 상호작용이 없는’ 인물들을 매우 생생한 이미지로, 그리고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석기시대 뇌는 이런 디지털 매체를 “초창기 환경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대상”으로 구분하여 처리하기보다는, 예전처럼 “자주 보이는 사람이면 아군”이라는 식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해버린다 그 결과, TV에서 반복적으로 보는 연예인이나 유튜브·SNS 스타를 무의식중에 실제 친구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왜 많은 사람이 미디어 속 인물을 실제로 대면한 적이 없어도 강렬한 친근감과 감정을 느끼는지, 심지어 심리적 의존감마저 형성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단서가 된다 사바나 원칙은 이렇듯 **“인류 초창기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체나 상황에 대처하는 데 우리 두뇌가 서툴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서투름’이야말로 현대사회의 여러 모순적 현상을 낳는 토대가 된다고 본다 예컨대, 무한정 제공되는 달고 기름진 음식이나 수많은 디지털 자극(도박, 쇼핑, SNS 알림 등)에 지나치게 휘둘리게 되는 것도, 뇌가 아직까지 ‘먹을거리나 자극이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해 있는 탓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남성의 과도한 성적 질투 같은 심리 기제도 마찬가지로, 인류 초창기 시절에는 부성(父性)을 확실히 하기 위한 중요한 적응이었지만, 현대의 피임 기술과 친자 확인 기술이 이미 문제를 크게 감소시켰다는 사실을 뇌가 제대로 고려하지 못해 생기는 ‘부적응’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사바나 원칙이 아직 학계에서 완전히 정설로 굳어진 이론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화심리학 분야에서 비교적 최근에 제안된 개념으로, 엄밀한 검증과 실험적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견해도 많다 그럼에도 사바나 원칙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대 환경과 고대 환경의 괴리가 왜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여러 가지 역설적·비합리적 양상을 야기하는지를 비교적 간명하게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에서도, TV 속 인물을 반복해서 접할수록 “마치 친구가 늘어난 듯한 만족감”을 느낀다거나, 현대 사회의 폭력적 행동이나 비만 등도 적응의 ‘잔재’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결국 사바나 원칙은 “인간은 왜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가?”, “왜 문명의 이기는 많아졌는데도 오히려 더 복잡한 문제들이 생기는가?” 같은 질문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답변을 제시해준다 쉽게 말해, 인간은 석기시대 방식으로 설계된 뇌를 가지고 21세기의 첨단 문명 속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갈등과 부적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우리의 뇌가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현대적 문제들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바나 원칙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