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향기 품은 군사우편 (1954)

주현미 - 향기 품은 군사우편 (1954)

노래 이야기 한국사에 있어 근대와 현대를 구분짓는 시점은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문제이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 현대사(韓國現代史)의 시작은 해방 이후부터라고 보는 관점이 일반적입니다 이 한국 현대사에서 6 25 전쟁과 관련된 노래를 꼽자면 여러분은 어떤 노래들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이미 앞서 주현미TV에서 소개해 드린 곡들 중에도 6 25전쟁에 관한 노래들이 참 많습니다 시간순으로 나열해보자면 전쟁 발발초기인 1951년, 광복 후 1호 가수인 현인 선생님의 '전우야 잘 자라'가 발표되었고 이듬해인 1952년에는 신세영 선생님의 '전선야곡', 금사향 선생님의 '님 계신 전선', 심연옥 선생님의 '아내의 노래', 1953년 현인 선생님의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노래가 발표되었는데 여기까지는 전쟁 중에 부르던 가요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이루어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은 전쟁 당시 겪었던 아픔이나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희망적인 메세지를 남고 있는 곡들이 많았습니다 1954년 오늘 들려드리는 유춘산 선생님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을 시작으로 박단마 선생님의 '슈샨보이', 남인수 선생님의 '이별의 부산 정거장', 박재홍 선생님의 '경상도 아가씨' 등이 대표적인 예인데 이 노래들의 공통점은 서구의 신나는 리듬이 도입되어 밝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미 전쟁은 휴전으로 멈추게 되었는데 대중가요까지 슬프고 한맺힌 가락을 들려주기보다는 오히려 희망적인 메세지를 주는 것이 낫다는 시대적인 바람이 있었겠지요 그렇게 1954년 라이온 레코드를 통해 발표된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박금호 작사, 나화랑 작곡의 작품으로 A면에는 이 곡이, 뒷면에는 '안개 낀 목포항'이라는 곡이 실려 있습니다 음반으로 발표된 것은 1954년이지만 이미 1952년 방송을 통해 알려져서 입소문에 의해 먼저 인기를 끌었던 곡이기도 하지요 나화랑 선생님의 작곡 스타일은 후배인 제가 표현하기에는 다소 무례할 수도 있지만 '음을 가지고 논다'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네요 '청포도 사랑', '무너진 사랑탑', '닐리리 맘보', '열아홉 순정', '울산 큰 애기', '님이라 부르리까' 등 나화랑 선생님의 히트곡들을 천천히 듣다 보면 '가장 한국적인 작곡가'로서 우리의 장단과 선율을 가장 잘 표현한 작곡가 중 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전에도 언급한 듯이 나화랑 선생님은 가수 겸 작곡가인 조규천, 조규만, 조규찬 씨 형제의 아버지로서 훌륭한 음악가문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이 노래를 부르신 유춘산 선생님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향기 품은 군사우편' 외에 '처녀일기', '안개 낀 목포항', '평양성의 울음소리' 등의 노래가 알려져 있지만 1931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가수로서 활동한 기록 외에 이 후의 생애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네 전해 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 가서 복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돌아가는 방앗간에 받은 님 소식은 충성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네 옛 추억도 돌아갔소 얼룩진 한자 두자 방앗간의 수레도 같이 울었소 밤이 늦은 공장에서 받은 님 소식은 고지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네 늦은 가을 창 너머로 떠오는 저 달 속에 그대 얼굴 비치어 방끗 웃었소" 예나 지금이나 '군사우편'이라는 직인이 찍힌 편지는 받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지요 요즘에는 군에 입대할 때 여러 장의 우표가 필수품이라고는 하지만 군사우편은 그 옛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전하는 군인들의 훈장과도 같은 흔적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전화나 휴대폰이 대중화되지 않아 통신이 수월하지 않던 옛 시절, 집배원이 전해 주는 남편의 군사 우편을 받아 보는 아내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부엌일을 하다 달려나가서 편지를 받아보고는 배달원이 싸리문을 나서기도 전에 눈물을 터트릴 수 밖에 없었겠지요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싸리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대문을 싸리문이라고 부릅니다 현재는 표준어로 사립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웬지 싸리문이라는 단어가 더 친숙하게 느껴지네요 3절로 이루어진 각각의 이야기는 전쟁에 나간 남편의 소식을 기다리는 세 명의 아내가 편지를 받아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부엌일을 하던 아내, 방앗간에서 일을 하던 아내, 공장에서 야근하고 있던 아내 시대가 가진 상황은 변해도 사랑하는 가족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전쟁에 나간 남편과 그를 기다리는 아내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되어 이제는 아련한 추억 속에만 남아 있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1950년의 그 여름으로 70여년이 지난 지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봅니다 '군사우편'을 통해 생사를 확인하고 사랑을 확인했던, 치열했던 우리 부모님들의 시대가 있었기에 행복한 표정으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우리의 모습도 존재할 수 있었겠지요 이 땅의 부모님들께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여러분 모두 같은 마음으로 '향기 품은 군사우편'을 따라 부르며 향수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