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내안의 적"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말씀과 삶]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내안의 적" // 인바이블 말씀사역 / 크리스천 신앙 성장을 위한 채널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링크 :    •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 크리ᄉ...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여러분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려면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교만”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한 장로님의 신앙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분은 신앙적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신앙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여러분, 우리는 사탄이 어떻게 공격하는지 잘 압니다. 사탄은 외부로부터 우리를 공격합니다. 생각을 통해 공격한다든지 유혹이나 죄를 통해 우리를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이런 사탄의 공격을 막을 준비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어떻게요? 내부의 적이었던 교만 때문에 신앙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교만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잠 18:12, 개정)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약 4:6)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여러분,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교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또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요? 이것을 모를 때, 우리가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교만이란 무엇이고 우리가 이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여러분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사실”과 “자랑”과 “교만”을 비교하며 설명해 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 사실은 무엇이며 자랑은 무엇이며 교만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실이 무엇인지 말씀드리면, “사실”은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않은 순수한 그대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발표했어. 그리고 좋은 결과가 있었어.”와 같이 말했을 때, 이것이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랑은 무엇이냐? 자랑은 사실에 자신을 포장하고 과장하며, 자신의 의와 영광을 첨가시킬 때 자랑이 됩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나 아니면 안 됐어, 내가 해서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온 거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교만은 무엇이냐? 자랑이 자신의 의와 영광이 첨가된 것이라면 교만은 자랑을 넘어 “나 아니면 안 돼”, “나만이 할 수 있어”라는 마음과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이번 프로젝트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사람이 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될 수가 없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사실과 자랑과 교만의 차이입니다. 그럼 여러분, 신앙적인 관점에서의 교만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사울 왕을 통해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한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왕으로 선출될 때, 짐보따리에 숨을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 10:17-27). 물론 내성적인 성격으로 이럴 수 있지만, 어쨌든 이 당시 사울은 자기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왕이 되면서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사울이 블레셋과 전쟁 때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 전쟁 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번제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도착이 늦어지자 사울이 어떻게 합니까? 직접 번제를 드리지 않습니까?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번제가 사울을 통해 드려진 것입니다(삼상 13:12). 여러분, 우리가 이런 사울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울이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사울 자신이 사무엘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려도 된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해 사울이 왕이 되면서 “자신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후에 사울은 어떤 행동을 합니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어떻게 합니까? 진멸하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 좋은 것들은 살려 두지 않습니까?(삼상 15:9)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사울이 이제 자신을 높이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이냐? 이처럼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 위치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신앙적으로 자랑과 교만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십니까? 자랑에는 자기를 높이는 것들이 들어가지만, 교만에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마음과 행동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때, 자신도 모르게 사울 왕처럼 교만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이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 2:5-7, 개정)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여러분, 우리 신앙인들이 교만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종의 형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을 높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인간은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높아지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높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을 하면, “꼭 이래야 합니까?” “요즘은 피알(PR) 시대니 오히려 나를 나타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싶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자신을 높이지 말라구요. 종의 형체를 가지라구요.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종의 형체를 가지라고 하는데 이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여러분 우리는 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 이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말로는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는 교만한 할머니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집에 한 며느리가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이걸 본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 며느리가 죽었다라고 생각을 했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났는데도 고부갈등이나 불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며느리가 들어오자 시어머니는 벼르고 별렀답니다. 며느리를 처음부터 꽉 잡아 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모질게 시집살이를 시켰답니다. 생으로 트집도 잡고 일부러 모욕도 주었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전혀 책이 잡히지 않았답니다. 어떻게요? 아예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발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친정에서 이런 것도 안 배워 왔냐” 며 트집을 잡더랍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공손하게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어머니 제가 친정에서 배워 온다고 했어도 시집와서 어머니께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그러니 모르는 것이 있으면 더 가르쳐 주세요”라며 공손하게 말을 했더랍니다. 또 한 번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을 나왔다고 하느냐”라며 모욕을 주더랍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대학은 나왔어도, 인생의 지혜는 어머니 같은 어른에게 배워야죠”라며 오히려 시어머니를 존중해 주었답니다. 여러분, 이런 며느리를 본 시어머니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느냐? 결구 나중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하는 것은 모두 신뢰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모습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종의 형체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기를 스스로 높일 때 충돌이 일어납니다. 내가 높아지고자 할 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미움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종의 형체를 취할 때 어떻게 되느냐?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연합이 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높이지 않고 겸손할 때, 하나님이 오히려 이런 우리를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서 취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늘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을 할 때의 일입니다(행 14:8-15).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합니다. 이때 사람들이 이것을 보며 뭐라고 소리를 지릅니까? “신이 이 땅에 내려왔다”라고 하면서 바나바를 제우스라고 사도 바울을 헤르메스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때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어떻게 했느냐? 이 소리를 듣고 옷을 찢으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만에 빠지지 않을 방법이 무엇이냐? 첫 번째는 종의 형제를 가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렇게 자신을 스스로 높이지 않으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냐?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을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구요. 여러분, 만약 사람들이 제우스라고 헤르메스라고 소리를 지를 때, 그냥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자꾸 이렇게 높이는 말을 들을 때 그냥 있으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므로 자신이 그런 존재로 믿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라고 시인하며 선포하면 어떻게 되느냐? 내 귀에 들려지는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므로 내가 스스로 높아질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럴 때,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구요.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살려고 애를 쓰므로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