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민족 명산·교류 상징 ‘금강산’의 오늘 / KBS뉴스(News)

[클로즈업 북한] 민족 명산·교류 상징 ‘금강산’의 오늘 / KBS뉴스(News)

남북 철도 공동조사가 시작되면서 교류 재개의 기대감이 커지는 또 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산인데요 특히 올해는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20년, 또 중단된 지 10년을 맞은 해인만큼 남북이 금강산에 갖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우리민족의 명산이자 남북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 이번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금강산의 의미와 관광 재개 가능성을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 사이로 새하얀 물줄기가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높이 74m, 너비 4m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의 웅장한 자태다 옥빛 구슬을 꿰어놓은 듯한 ‘련주담’ 과 봉황새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것 같다는 ‘비봉폭포’도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가 금강산 관광 20주년을 맞아 가진 남북 공동 기념행사를 통해 10년 만에 공개된 금강산의 절경이다 이번 공동행사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리건택 부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기원하며 남북관계에서 금강산이 가지는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이곳 금강산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금강산관광의 문은 다시 열려야 합니다 "] [리건택/조선 아시아 태평양 평화위원회 부위원장 : "금강산은 우리겨레의 마음속의 천하제일의 명산으로 뿐 아니라 민족의 화합과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합의 장으로 민족의 혈맥과 지맥을 하나로 이어놓은 통일의 상징으로 더욱 소중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금강산 관광 시작 20년, 그리고 중단 10년 금강산은 다시 한 번 남북 교류와 화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까 [정주영/1998년 10월/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 : "금강산을 세계적인 관광지구로 공동개발하기로 하였으며 모든 사업은 우리정부의 승인을 받는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기로 합의하고 의정서를 교환하였습니다 "] 1998년 10월, 북한을 방문한 현대 정주영 회장은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남북 합의서를 들고 돌아왔다 1989년, 기업인으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관광 개발 의정서'를 체결 한지 9년, 소떼를 몰고 방북한 지 넉 달 만의 일이었다 당시 북한에서도 정주영 회장의 방문을 주요하게 다루며 금강산 관광 사업을 민족을 위한 길이라 언급했다 [북한기록영화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 장군’ : "고령의 몸으로 평양을 찾아온 그의 건강도 염려해주시고 민족을 위해 하나라도 기여하려는 그의 마음을 더 귀중히 여겨주시며 경제 협력 사업에서 그가 제기하는 모든 문제들을 다 풀어주셨습니다 "] 그러나 북한이 금강산 관광 사업에 합의한 것은 당시 북한 경제 상황 때문이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고, 90년대 중반‘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며 위기를 극복할 돌파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임을출/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그 당시 북한은 사실 자본주의 가장 자본주의화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라든지 또는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을 상당히 주저했어요 그러니까 한국 기업하고 경제 협력을 하겠다고 손을 내밀 때는 그만큼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그런 어떤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고 북한 입장에서 외화를 또 벌어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어요 그 당시에 그래서 이 외화를 가지고 경제 발전에 종잣돈을 활용하겠다는 그런 뜻을 갖고 있었던 거죠 "] 마침내 1998년 11월, 동해항에서 금강호가 출항하면서 금강산 관광의 막이 올랐다 분단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금강산의 수려한 풍치 대한민국 관광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금강산 안내를 담당하던 북한 안내원들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던 시기다 [김연실/당시 금강산 안내원 : "김연실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렇게 선생님들 사진을 계속 찍으시는데 기념으로 될 만한 사진 저한테 보내주셔야지 제가 사진을 찍겠습니다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