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은 물 푸른 산 여름철 어린이 물놀이 명소 곡성 도림사 청류구곡 도림사계곡에 가족 물놀이 다녀왔어요.(#191)
지난 7월 말 도림사 계곡에 물놀이 다녀 왔습니다 ◯ 1곡 쇄연문 ( 도림사 길가에 위치) 자욱한 운무로 뒤덮인 상태 ◯ 2곡 무태동천 (도림사 일주문 근처)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 ◯ 3곡 대천벽 (도림사 진입로) 군왕에 대한 지극한 충성 ◯ 4곡 단심대 (계곡 첫 번째 반석) 나라 잃은 설움 단심대와 비밀 결사의 이름이 적힌 서산강론 ◯ 서산강론 단심대에는 서산강론이라는 글귀와 함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일제로부터 나라를 구하자는 곡성 우국지사들의 비밀결사 서약임이 훗날 알려졌습니다 9인의 지사 : 정봉태 정수태 정해태 조병순 조병흠 조상천 박병선 이준 윤규채 ◯ 5곡 요요대 (도림사 근처 계곡) 물과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노는 곳 ◯ 6곡 대은병(도림사 후문) 은사가 은거하는 산림 ◯ 7곡 모원대(작은 폭포 부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나라 잃은 설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9곡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5곡 요요대 ◯ 8곡 해동무이 ( 계곡 안쪽 널찍한 소 입구 바위 ) 중국의 대학자 주희가 살았던 무이계곡을 의미 ◯ 9곡 소도원 ( 등산로 바위에 새겨짐 ) 중국이 시성이라 일컬어지는 도연명이 살던 도화원을 연상케 하는 풍경 8곡 해동무이는 도림사에서 조금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널찍한 소를 지키는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마지막 9곡 소도원에는 멋드러진 폭포가 숨겨져 있습니다 구한말 최익현 등 의병장과 곡성 지사들이 은밀한 회동을 갖던 청류계곡 구한 말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곡성 사람들은 치열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당시 곡성은 의병장 최익현 선생과 기우만 선생의 의병을 지원하는 병참기지와 피신처 역할을 했습니다 일제가 삼엄한 감시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이 선택한 은신처가 바로 청류동 계곡이었습니다 곡성을 정병태 선생과 조병순 선생을 곡성의 지사들은 한량들의 풍류놀이를 가장하며 청류동 계곡에서 의병장과 회동하며 작전을 짜며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나라 잃은 설움과 반드시 되찾겠다는 결기를 담아 바위에 새긴 청류 구곡 치열한 항쟁에도 불구하고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를 거치면서 나라가 송두리째 일제에게 넘어가자 그들은 크게 절망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항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짐을 담아 반드시 나라를 되찾겠다는 결기를 새긴 것이 바로 앞에서 소개한 구곡입니다 이후 그들은 일제 치하에서 대대적인 민족 계몽운동을 펼치는 한편 상해 임시정부와 선을 잇고 독립자금을 조달하였습니다 이때도 청류동 계곡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회합 장소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십 년 넘게 지속된 이들의 위장 활동이 일제에 발각되어 청류동 계곡의 항쟁을 주도한 조병순 선생은 일경에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 끝에 1921년에 순국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이 서울에서 달려와 대성통곡하며 비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아마도 장지연이 친일로 변절하기 이전인 것 같습니다 청류 계곡은 빼어난 풍경 이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슴 뭉클한 사연을 담고 오늘도 맑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을 주 무대로 활약했던 독립지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도 이제부터는 청류동 계곡으로 불러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서산강론 청류동계곡 각자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