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년째 지켜주지 못한 유언…안중근 의사 유해는 어디에? / YTN

105년째 지켜주지 못한 유언…안중근 의사 유해는 어디에? / YTN

■ 전준형, YTN 국제부 기자 [앵커] 하얼빈 공원에 내 뼈를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조국에 묻어달라라는 것이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었습니다 105년이 흘렀지만 이 유언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YTN이 광복 70주년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 특별기획 3부작을 방송했습니다 이 특별기획을 취재한 전준형 기자 초대했습니다 어서오세요 수고 많았습니다 우선 시청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왜 지금까지 유해를 찾지 못한 것인지 원론부터 다시 한 번 설명을 드리면 좋겠습니다 [기자] 당시 일본이 안중근 의사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뒤 유해도 돌려주지 않고, 기록도 제대로 남기지 않은 채 임의로 매장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이듬해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한 달 뒤인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되면서 순국하셨습니다 사형 집행은 이토 히로부미가 숨진 시각하고 같은 시각인 오전 10시 15분에 맞춰 진행됐고요 당일 오후에 안중근 의사의 두 동생이 유해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뤼순 감옥 측은 공안상의 이유라면서 안 의사의 유해를 돌려주지 않고, 임의로 매장해버렸습니다 당시 일제의 감옥법을 봐도 사망자의 친척이나 친구가 요청하면 언제라도 유해를 내주도록 돼 있지만, 법까지 어겨가며 유해를 숨긴 겁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첩보 내용을 보면,재미있는 내용이 있는데요 일본은 안중근 의사가 사망한 뒤 유언대로 하얼빈 공원에 묻히게 되면 하얼빈이 한인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은 패전할 때 전쟁 범죄를 감추기 위해 군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불태워버렸는데요 이 때문에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어디에 매장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가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앵커] 그 뒤에 유해를 찾기 위한 노력이 그동안 진행은 됐었던 것이죠? [기자] 물론 여러 차례 관련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일단 먼저 광복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인사들이 귀국하면서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유해 를 찾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진행했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그 중심에 있었는데요 김구 선상이 암살 되면서 이 사업이 중단됐고요 2000년 들어서면서 그 상황이 급진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안 (중략) ▶ 기사 원문 : ▶ 제보 안내 : 모바일앱, 8585@ytn co kr, #2424 ▣ YTN 유튜브 채널 구독 :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