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의 아름다운 퇴장(요3:22~3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선구자의 아름다운 퇴장(요3:22~3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강추] 세례요한에게는 3가지의 사명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세례요한의 2가지 사명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세번째의 사명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 사명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에서도 실수할 때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제자훈련과 G12나 D12에서 말하는 12명을 제자삼는 제자시스템이다. 대체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명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오늘날 제자훈련의 위험성을 경계해야 하는가? 세례요한에 대한 기록은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에 두 곳 다 나온다.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같은 공관복음에서는 세례요한의 첫번째 사명에 대해서 잘 기술되어 있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첫번째 사명은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해주는 선구자로서 일을 감당하는 것이었다(마3:1~12, 막1:1~8, 눅3:1~18). 이것은 이미 B.C.690년 이사야에 예언에 따라,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서 메시야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더불어 B.C.430년경 말라기의 예언에 따라, 메시야 앞서 보낸 전령이자 자녀와 마음을 아비에게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말3:1,4:5~6). 그런데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두번째 사명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즉 소개하는 일이다(요1:31). 그런데 이 두 번째 사명은 세례요한이 언제까지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지 그 기간까지 말해준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요1:31)"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풀어야 할 기간은 그가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개할 때까지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이제 세례주는 일을 그쳐야했다. 이미 예수님을 천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소개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때 세례요한에게 세번째 사명을 주셨다. 그것은 공관복음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의 핵심은 요3:29~30이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증가되어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감소되어야) 하리라(요3:29-30)". 여기에서 신부를 취하는 '신랑'은 '예수님'을 뜻하며, 신랑의 음성을 듣고 크게 기뻐하는 '친구'는 '세례요한'을 뜻한다. 그리고 '신부'는 회개와 믿음을 통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 곧 '교회'를 지칭한다. 이 본문에 의하면, 세례요한의 세번째 사명은 그분(그리스도)은 증가하게 하고 자신은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말의 참된 뜻은 무엇일까? 이 말을 얼핏보면, 이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나타나셨으니 자신이 물로 세례주는 사역을 그만두고 그 사역을 예수님에게 넘기라는 말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말은 그러한 뜻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증가되어야 하고 자신은 감소되어야 한다는 말의 본 뜻은 29절에 그 힌트가 나와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해야 할 일이 신부를 취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분이 신부를 취하는 일은 증가되어야 하겠지만 자신의 세례를 주는 사역은 감소되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자신을 위대한 선지자 혹은 메시야로 생각하고 따라오고 있는 자신의 제자들마저 예수님에게 인수인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제자들도 결국에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세례요한의 사역은 점차 감소되어야 하겠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점차 증가되어야 한다고 했다. -- 계속 --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