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사 (1) -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하소서! (에베소서 1:15-19) --- 안성삼목사 주일설교 - 목자들의교회 - 2024/08/18
설교 요약: ① 바울은 교회를 위한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② 바울의 간구 제목이 나에게도 필요합니다 ③ 바울의 중요 기도 제목은 분명해졌습니다 ① 바울은 교회를 위한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에베소교회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베푸신 그 놀랍고 신령한 복에 대해서는 온전히 깨달아 알지는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② 바울의 간구 제목이 나에게도 필요합니다 나도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을 이미 받았으나 이 받은 것을 깨달아 알아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지지 않으면 여전히 세상 사람과 같이 땅의 것만 소망하게 되고, 제대로 된 신앙의 걸음을 걸을 수가 없습니다 ③ 바울의 중요 기도 제목은 분명해졌습니다 3년동안 목회에 심혈을 기울였던 에베소교회를 위해 기도할 제목이 많았지만 고민 끝에 바울은 이 주제를 그들을 위한 기도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깨달음이 없으면 우리의 삶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구한 것은 4가지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 진실로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17) 2 부르심의 소망을 알게 하옵소서 (18) 3 기업의 풍성함을 알게 하옵소서 (18) 4 능력의 위대함을 알게 하옵소서 (19) 1 진실로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1) 단순히 지식적인 [앎]을 말하지 않습니다 2) 영생이란 하나님을 [앎]과 같은 것입니다 3) [앎]에도 단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4) [앎]을 감정으로 대치하면 속기 쉽습니다 5) [앎]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가능합니다 6) 신앙의 성장은 [앎]의 수준에 비례합니다 7) 하나님을 [앎]은 허락 되어야 가능합니다 1) 단순히 지식적인 [앎]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안다'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적인 앎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적인 앎]을 말합니다 결혼 정보회사의 앎과 부부생활을 통한 앎의 차원은 다릅니다 아테네인들처럼 (행17:23)“알지 못하는 신”을 믿으면 안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은혜를 베푸실 것을 간구한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떼쓰는 기도만 드릴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제목이 이런 [본질적인 기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2) 영생이란 하나님을 [앎]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생이 무엇임을 간단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당시 에베소 교인들은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이미 영생을 소유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해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확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앎]에도 단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험에 의하면 처음에는 의심하는 신앙의 수준에 머물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의심하기가 더 어려워져버리는 수준에 다다릅니다 내적 믿음을 지키기 위해 외적인 어떤 증거 따위는 이제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안다는 것은 계시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교리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계시에 의해서 우리가 내적으로 그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4) [앎]을 감정으로 대치하면 속기 쉽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정적인 면에 너무 치우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감정에 좌우되기에 감정이 사라지고 나면 흔들리게 되는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감정보다도 하나님을 깊이 아는 지식을 간직함으로 차거나 덥거나 단조롭거나 열열한 감정으로 하등의 문제도 일으킬 수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5) [앎]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 이론이 얼마나 논리적인가 또는 교리가 얼마나 분명한가에 달려있지 않으며 그것은 오직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떤 분들은 신비적으로 해석할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더 위험스럽습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1:17) 라고 부른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이루실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6) 신앙의 성장은 [앎]의 수준에 비례합니다 우리 신앙이 자라간다는 것은 다름아니라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깊이는 하나님을 아는 정도에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 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거기에서 진정한 봉사와 충성도 나오는 것입니다 7) 하나님을 [앎]은 허락 되어야 가능합니다 단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허락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지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열어보여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 영안, 신령한 눈을 열어서 보게 하실 때에 알게 되고 모든 비밀한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