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37 / 인자가 고난을 받고 / 눅 9:18-27

누가복음 강해37 / 인자가 고난을 받고 / 눅 9:18-27

[누가복음 강해 37] ‘인자가 고난을 받고’ Ⅰ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9:18)고 하십니다 표현상, 내용상으로, 어법상으로 질문이 분명하지만 질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한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누구인지 눈치 챘는지, 정체를 파악했는지 알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사람들이나 제자들이 정답을 말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여론조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과연 어떤 대답들이 나올지 호기심을 갖고 들어보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질문이 아닌 이유는 사람들이 정답을 말할 가능성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는 것, 죄의 종들이 예수가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일체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예수가 가장 분명하게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예수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대답을, 그것도 정답을 기대하면서 질문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예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침례 요한, 엘리야, 옛 선지자 중의 한 사람 정도일 뿐입니다(9:7~8, 19) 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9:20)고 하신 것도 질문이 아닙니다 혹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준에 합당해서, 제자가 될 만한 자격이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거나 충성이 있거나, 예수님이 보시기에 제자로 뽑을만한 근거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것이 있어서 당연하게 제자로 선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이기에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있고, 예수님을 이해했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이해하고 예수님의 질문에 정답을 말했다고 생각합니다(9:20) 하지만 제자들은 특별한 사람, 합당한 사람, 자격이나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동일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은 죄인이라는 차원에서 동일합니다 죄인 중에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사람이 없고,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없고, 죄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없고, 죄인으로서 거룩이나 정결함을 유지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뽑을 때 시험을 보지 않았고 자격이나 조건을 검증하지 않았고 아무나 뽑은 것입니다 제자들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질문에 정답을 말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3 하나님의 그리스도 무리들이 예수에 대해 말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살아났다’와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는 사실상 같은 말, 같은 의미, 같은 뜻, 같은 내용인데 다만 표현만 다를 뿐입니다 구약에서 제사장이든, 왕이든, 선지자이든 하나님께 부름받았거나 쓰임받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을 히브리어로 ‘메시야’, 헬라어로 ‘그리스도’입니다 ‘메시야’라는 표현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특별한 한 사람을 위한 호칭이 되었지만 원래는 매우 평범한 호칭, 여러 사람, 다양한 직분에 통용되던 일반적인 호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뻔히 틀린 답, 엉뚱한 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면서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사고, 그들의 인식, 그들의 내용, 그들의 한계를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 질문하신 것입니다 정답을 못 맞췄다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들의 실체를 밝혀 주신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기대도 못하는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22절입니다 Ⅱ 인자가 고난을 받고 1 인자가 22절은 사람들의 관점에서 표현하면 황당무계한 소리가 되지만 예수님의 관점에서 설명하면, 지금 예수님이 저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방식, 도무지 당시의 그 어떤 사람이나 지도자들에게서도 언급되지 않은 차원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실 일, 예수님만 하실 일, 예수님 자신이, 예수님 스스로, 예수님이 친히 행하실 일을 강조하며 선포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할 일, 제자들이 할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둘째,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메시야 또는 그리스도를 기대하면서 따라다닌 이유는 강한 자, 쎈 자, 이기는 자, 승리하는 자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야가 모든 적들을 물리쳐서 자신들에게 새로운 삶, 부유한 삶, 번영한 삶을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메시야,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는 말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없습니다 2 살아나야 하리라 셋째, 그리스도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당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한다면 당연히 적들에게, 상대편에게, 반대편에게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로 하면 로마에게, 로마사람들에 의해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민족, 같 나라, 같은 백성,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넷째는 백성들을 멍하게 만드는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도 사람들의 인식에 없고 개념에 없는데,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고 살아나는 기간도 스스로 언급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저들이 어떤 대답을 하든, 예수에 대해 어떤 이해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든 그들은 22절의 예수님의 사역을 꿈에도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2절의 선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저들의 사고, 개념, 생각, 인식, 방법과 전혀 다른 선포를 하기 위해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3 나를 따라오려거든 22절은 예수님과 관계된 내용, 즉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를 지실 사역을 예고한 내용입니다 23~24절은 성도와 관계된 내용, 즉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예전의 제자들이나 오늘날의 성도들이 해야 할 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이 질문이 아닌 것처럼 예수님의 지시나 명령같은 말씀은 제자들에게, 성도들에게 실제로 그렇게 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은 죄인들이 행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거나 순종할 수 없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할 수 없어서, 그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찾으러 오신 예수님이 갑자기 죄인들에게 의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면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고, 예수님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정체성을 송두리채 거부하는 말씀, 예수님의 사역을 무용화시키는 말씀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에게 만들어낼 결과,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이 죄로부터 구원받아 성도가 되면 그때 성도들에게 이루어질 열매를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반드시 22절 있어야만 23절이 언급될 수 있습니다 4 기독교의 순서 예수님이 행하는 사역에 대한 예언적 선포가 있은 후에야 사람들, 제자들의 행동에 관한 안내가 등장합니다 예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일뿐, 사람들의 행동에 따라 사람들에게 임할 결과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예수님은 그런 순서로 말씀하셨고, 성경에는 그런 순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당하고, 버린 바 되고, 죽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셨습니다 그 결과가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이라는 결과, 죄인에게는 불가능한 23절 이하의 삶이 가능해질수 있는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전하는 소식을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선포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