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한국사 I 173 광해군의 실리 외교, 왕좌를 빼앗기는 빌미가 되다
광해군은 명에 파병을 결정한다 이후 후금과의 전투에서 명은 대패한다 지원군으로 참전한 조선군의 피해도 컸다 특히 1619년에 심하에서 벌어진 사르후(‘샬르흐’라고도 불린다) 전투에서 장수 김응하를 비롯, 1만 3천여 명의 조선군 중 절반 이상이 전사한다 이에 광해군은 조선군 총사령관 강홍립 장군에게 밀서를 보내 ‘형세를 보아 향방을 결정하라’는 명을 내린다 명이 패배한 직후, 강홍립 장군은 병사들을 이끌고 후금에 투항했고, 1620년 강홍립과 10여 명을 제외한 조선군들은 모두 본국으로 송환된다 투항 이후 강홍립은 지속적으로 후금의 동향을 광해군에게 보고했다 광해군은 이 정보를 통해 후금에 대한 현실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명에 대한 ‘재조지은’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던 신하들에게 광해군의 실리외교는 명에 대한 배신이자 불충이었다 이는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반정의 빌미가 됐다 #조선군 #사르후 #전투 #패배#강홍립_장군 #후금 #투항#광해군의_실리외교#인조반정 #빌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