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 67 / 의롭다 하심을 받고 / 눅 18:1-17

누가복음 강해 67 / 의롭다 하심을 받고 / 눅 18:1-17

[누가복음 강해 67] ‘의롭다 하심을 받고’ Ⅰ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1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 18:1~8절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내가 어떻게, 얼마나, 무엇을 기도하는가?’가 아니고,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이 아니고요, ‘이렇게 하면 응답받는다!’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기도하고도 낙심하고 있으니 예수님은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대셔야 합니다 재판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망나니입니다 한 과부가 원수가 있고 원한이 있어서 재판장을 찾아갔는데 자주 갔다고 합니다 재판관이 과부를 환대할 리가 없고, 과부의 요청을 면밀히 살펴서 신속하고 유익하게 처리해 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과부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고, 과부의 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 과부가 뇌물을 주어야 하는데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고, 과부가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고, 재판장이 못된 놈, 불의한 재판장이라는 것입니다 2 불의한 재판장 재판장은 과부의 요청이 정당한가, 과부의 원수라는 작자가 어떤 악한 행동을 했는가를 따져보지는 않고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고 합니다 인성만큼이나 재판 과정도 엉망입니다 초점을 여인에게 맞추어 과부가 열심을 내었다고 칭찬할 것이 아니고, 비록 재판장이 과부를 무시했으니 좌절하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재판장이 들어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호소한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이 여인처럼 낙심하지 말고 응답받을 때까지 인내하면서 부르짖자고 권면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 비유는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근거,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이 공정한 사람이었다면, 지극히 평범하게 재판장이 일을 일반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이었다면, 재판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존중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나 소박하게 그냥 재판장이 일을 절차대로만 진행하는 사람이었다면 이 여인은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았어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불의한 재판장을 상대로 들어줄 때까지 더욱 간절히 구하라고 권면하실 리가 없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기도를 할 때는 상대방이 들어줄 때까지, 귀찮아서 안 들어주고는 못 배길 정도로 구하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해야 겨우 들어주시는 분이라면 하나님도 불의한 재판장과 다를 바가 없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3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대조하는 것은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이요,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 같은 분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너희가 기도하는 대상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는 분, 그것도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즉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와 같이 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낙심하는 이유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면,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아시고 친히 수고까지 해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면 낙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Ⅱ 의롭다 하심을 받고 1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18:9~14절은 자기를 의롭다고 믿는 사람에 대한 비유입니다 과연 저들의 생각이 맞았는가, 저들이 주장하는 근거와 방식과 절차가 맞았는가, 그들의 예상대로, 기대대로 ‘그들이 의롭다’고 선언을 받는가를 확인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첫째, ‘서서 따로 기도하여’도 매우 신중한, 의도적인 행동입니다 혹시라도 부정한 사람과 가까이 있어 자신도 부정함을 당할지도 모르기에, 어떻게든 자신의 정결함과 의로움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조심하여 애초에 사람들에게서 떨어져서 따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바리새인이 언급한 내용은 모두 맞는 말입니다 거짓이 아니고 과장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평상시에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기에 당연히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이며, 동시에 당시에 불의한 자의 대표로 비난당하던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이 맞습니다 셋째,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구하고, 하나님이 행동하기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알린 것입니다 그저 유대교에서 정한대로, 유대교가 의롭다는 판단을 받을 수 있다고 제시한 행동을 준수한 것입니다 유대교가 정한 규례, 유대교의 기준이나 방식에 의하면 이런 것을 하면 공로가 쌓이고, 공로가 쌓이면 하나님의 은혜나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는 것, ‘의롭다는 선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2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세리도 바리새인처럼 ‘멀리 서서’인데, 바리새인은 혹시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기가 부정하여 질까봐 따로 섰고, 세리는 혹시 자기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부정하여 질까봐 따로 섰습니다 세리가 친절하다거나 배려심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고 둘 다 유대교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름을 치며 이르되’라고 했는데 이것도 신실함이 아니라 세리라는 신분, 죄인이라 비난받는 사람이 하늘을 바라볼 자격이 없다는 통념을 따른 것일 뿐입니다 또 세리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와 같이 말 그대로 기도를 했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도 했습니다 이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 모두 유대교의 작동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두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고, 유대교의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성전에 기도하러 온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교만한 것이 아니고 세리가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은 거짓말을 했고 세리는 진실을 말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사실대로 말 한 것입니다 3 의롭다 하심을 받고 바리새인과 세리 중에 누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을까요? 유대교의 기준, 유대교의 방식에 근거하면 당연히 바리새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인데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의 생각이 틀렸고, 유대교의 기준도 방식도 생각도 틀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너희가 알고 있는 것, 너희가 생각하고 있는 것, 너희가 행하고 있는 것이 모두 하나님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누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가?’,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는가?’가 아니라 ‘너희 생각이 틀렸다’입니다 16:19~31절의 이야기도 부자는 가고 거지는 못 갈 것이라는 너희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비유와 관련없이, 바리새인과 세리 중에 누가 의롭다 하심을 받느냐고 묻는다면 두 사람 모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가 아브라함의 품에 가느냐고 묻는다면 두 사람 모두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브라함의 품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 유대교의 교훈, 하나님의 복음 세상의 교훈과 기독교의 복음의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을 소개하자면, 세상은 온통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결국은 인간이 더 수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방법론이 없습니다 인간을 다그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열심히 일하신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은 ‘더욱 열심히 일해서 복을 받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은혜로 복을 주셨다’고 선포한 후, ‘받은 복을 알고, 받은 복을 누리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