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궁열전] 선조의 후궁으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恭嬪 金氏)](https://poortechguy.com/image/_aKZJcbUwFU.webp)
[조선후궁열전] 선조의 후궁으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恭嬪 金氏)
#조선후궁열전 #선조 #광해군 #공빈_김씨 #인빈_김씨 #임진왜란 #허준 #칠궁 조선후궁열전 선조의 후궁으로 광해군의 생모 공빈 김씨(恭嬪 金氏) 공빈 김씨(恭嬪 金氏)는 조선 선조의 후궁이자 광해군과 임해군의 친어머니인데 아버지는 해령부원군 김희철이며, 어머니는 권장의 딸로 김희철은 공성왕후 추존 때 부원군으로 봉해졌다 인조반정 이후 추탈되었습니다 아들 광해군이 조선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조정 대신들의 반발을 꺾고 왕비로 추숭되지만, 광해군이 쿠데타로 폐위되자 시호는 삭제되고 신주는 사가로 내보내지는 등 살아있을 때보다 사후가 더 극적인 인물입니다 야사에는 소주방 나인이었다가 선조의 승은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임해군을 낳기 전부터 이미 종2품 숙의 신분이었던 점과 친정 배경 등을 보면 양반가 출신의 간택후궁으로 추정됩니다 궁녀 출신 승은후궁이라면 자식을 낳고 나서야 비로소 종4품 숙원 품계를 받기 때문이며 할머니는 정인지의 증손녀이자 세종의 아들 계양군의 외증손녀였고, 어머니는 태종의 딸 경안공주의 직계 6대손이었습니다 선조 4년인 1571년에 귀인 정씨와 함께 간택되어 입궁한 듯한데 최입의 『간이집(簡易集)』에 실린 귀인 정씨 묘지명에 따르면 숙의 2명을 뽑았다고 하는데 다른 1명이 공빈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조 5년인 1572년에 임해군을 낳고 귀인이 된 후 이어서 광해군을 낳고 정1품 빈이 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인왕후가 회임을 못하는 상황에서 첫 아이를 낳아 임금의 총애를 독차지할 정도로 위세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을 낳은 지 2년만인 1577년에, 만 23세의 젊은 나이에 산후병으로 사망했는데 공빈은 죽기 전에 본인이 아픈 것은 다른 후궁들의 저주 때문이라고 선조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조수정실록 11권, 선조 10년 5월 1일 무자 3번째기사 1577년 명 만력(萬曆) 5년 공빈 김씨의 졸기 공빈(恭嬪) 김씨(金氏)가 졸하였다 공빈은 사포(司圃) 김희철(金希哲)의 따님으로 임해(臨海)·광해(光海) 두 왕자를 낳았는데, 이 때 산후병으로 졸하였다 김씨는 본디 상의 총애를 입어 후궁(後宮)들이 감히 사랑에 끼어들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