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스페셜 – 이순신 1부,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 / KBS 2003.6.14. 방송

KBS 역사스페셜 – 이순신 1부,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 / KBS 2003.6.14. 방송

한산대첩, 일본의 이순신 제거작전이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운 히데요시 최측근 심복, 칠인의 창 중 한 명이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용인에서 단 2천 명으로 10만 조선군을 물리치는 놀라운 전과를 세운다. 용인전투 대활약 후 와키자카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는다. "이순신을 제거하라!" 와키자카는 73척의 함대를 이끌고 한산도로 향한다. 朝·日 최정예 수군 최초의 정면대결, 한산대첩 한산대첩은 조선과 일본의 최정예 수군이 바다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정면대결이었다. 조총부대를 앞세워 백병전에 강했던 일본군은 전쟁영웅 와키자카를 지휘관으로 삼아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러나 최정예 일본수군도 적의 진용과 지리,지형을 과학적으로 절묘하게 이용한 이순신병법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이순신병법의 결정판인 한산대첩을 이순신장군의 장계와 와키자카記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현했다. 한산대첩, 7년 전쟁의 승부를 가르다 한산대첩의 결과 와키자카의 함대는 거의 전멸한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바다에서는 더이상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해 해전금지령을 내린다. 바다에서의 패배란 일본군에게는 보급로가 막히는 등 치명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훗날 ‘근세일본국민사’에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군은 반신불수가 되었고, 조선정벌은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기록한다. 패전으로 일본이 얻어간 전리품(?)... 학익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제독의 정자전법. 이것이 한산대첩의 이순신병법에서 배워간 것이라는 일본학계의 주장이 있다. 와키자카記에 초승달모양으로 둘러쌌다고 기록하고 있는 이순신장군의 전법이 학익진이다. 메이지시대 일본 해군 창설과 함께 일본에서 활발하게 연구된 이순신병법. 도고제독은 스스로를 이순신의 제자라 칭한다. 그리고 일본해군은 한산해전을 높게 평가하여 전투가 열렸던 한산도를 매년 찾아 이순신 장군에게 진혼제를 올린다. 왜 그들은 그토록 이순신에 주목했던 것일까? 일본의 이순신병법 연구, 그 내막을 샅샅이 들여다본다. 역사스페셜 200회 – 특별기획 이순신 2부작, 1부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 (2003.6.14.방송) http://histor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