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극빈 / 김도은, 시 해설

2024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극빈 / 김도은, 시 해설

#시낭송 #시쓰기 #신춘문예 2024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극빈 / 김도은 그 많은 소란과 발걸음과 악다구니들을 겪고도 골목은 여전히 휑하다 그늘이 묻은 소매 끝에 삶은 돼지머리 냄새가 가득하다 이마를 풀어헤친 나무의 복선 사이로 저기, 좁은 골목 끝으로 환한 끝이 보인다 그 끝으로 얼마나 많은 이쪽을 저쪽으로 끌어들였나 기울어진 지붕 끝으로 끌어 내린 저 어둑한 그늘들은 누구의 뒤끝들인가 더는 새것이 찾아오지 않는 양쪽을 둔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이쪽 또는 저쪽에 속지 않는다 한때 유일한 재산이었던 포물선들은 조금만 펴거나 휘어도 뚝 부러지고 말 것 같은데 군데군데 구멍 난 혁명가를 입은 노인은 질긴 옛날 노래를 잇몸으로 부른다 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 팔꿈치에 휘감은 불안은 바짝 마른 저수지보다 컸다 여전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은 아름답지만 이 극빈도 조만간 헐릴 것이라는 말들 그래, 함께 헐리면 편하지 지탱이 지탱을 업고 하는 말들은 그마저도 죄다 빌려 온 말들이라는 것 돌려줄 곳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어둑한 한 평의 미궁들엔 다행히도 labyrinth, maze 무더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 들어올 것도 없이 여미는 겨울보다는 낫다는 것 홀로, 깊은 안쪽이 되는 것이다 ////////////// 멧새소리 / 백석 처마 끝에 명태(明太)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