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애욱 [47] - 동백 아가씨 (1964년도)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엘레지의 여왕으로 동백꽃 화사하게 피었을 남녘, 검붉은 갯너울이 눈에 선합니다 꽃잎에 새긴 사연, 춘희의 노래도 흥얼거려집니 다 이 노래는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라트라비아타 춘희가 모티 브로 노래가 나온 이 동백아가씨라는 영화도 만들어졌으 며, 그 영화의 주제곡이 됐습니 다 이 곡은 원래 이미자보다 1년 먼저 데뷔한 최숙자가 취 입할 예정이었으나 계약금이 문제가 돼, 당시 23세인 이미 자가 불렀고 그녀를 엘레지의 여왕으로 만들어줬습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이미자는 1941년 서울 한남동에서 태어나 1958년 TV노래 자랑에서 1등을 한 뒤 이듬 해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습니다 동백아가씨는 1964년에 35주 동안이나 가요차트 1위 를 차지했고 음반도 100만장 이나 팔리면서 전설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이 노래는 파월 장병 위문공연 당시 공연장을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이후 비 둘기부대의 사단가로 불렸을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 다 한때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 라 라트라비아타는 춘희, 춘희 는 동백아가씨, 동백아가씨는 이미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 습니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그녀의 폐 활량은 일반인의 2 5배나 되 며, 노래를 마치 일반인이 말하 듯이 하는 성대 구조를 가졌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애절함 구 슬픔 호소 절규가 적절히 배어 있는 100년에 한명 나올까 말 까 한 가왕입니다 이미자의 3대 금지곡 동백아가씨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은 박정희 대통령의 애창곡 이었으나, 발표 1년여 만에 왜색조 비탄조와 표절시비의 이유로 모두 판매 금지됐다가 1987년에야 해금이 됐습니다 여인의 깊은 한과 애상적인 느낌을 잘 표현한 이미자의 노 래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으로 묶인데 대해서는 당시 일각의 반대 속에 강행된 한일 기본 조약 체결과 관련하여 정치적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해석이 주류였습니다 군부 독재 시대 였기에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 었소의 빨갛다는 가사가 문제 가 되었다는 설도 있었으나 이 노래를 부른 이미자는 후에 경 쟁 음반회사의 입김 때문에 일 어난 일이었다고 회고 했습니다 작곡자는 백영호, 작사자는 한 산도이며 1964년 제작된 엄앵 란과 신성일 주연의 동명 영화 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져 지구 레코드에서 발매했습니다 나 중에 작곡가 백영호 선생이 죽 고나서 아들 백경권 씨는 음반 제작 당시 동백아가씨라는 제 목이 촌스럽다고 레코드사 에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부친 께서는 직접 레코드판을 들고 다방이나 음악감상실을 찾아 홍보활동을 벌였다고 백영호 추모 강연회에서 동백 아가씨의 비밀을 밝혔습니다 이미자의 노래는 젊었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 습니다 본인 말처럼 바이올린 같은 음색이 조금 탁해졌고 밀 어붙이는 힘이 약해졌으나 그 가 지금껏 지키고 있는 라이브 원칙은 음반 녹음할 때와 똑같 이 부르는 것입니다 여든이 넘 은 나이의 가수가 음반과 똑같 이 부르겠다고 하는 것은 지금 전성기를 누리는 어떤 가수도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미자 노래는 악보와 일치하 지 않고 음을 놓았다가 당기고 밀었다가 잡아챕니다 그러나 그 테크닉이 요즘 트로트 가수 들의 가볍게 출렁대는 창법과 는 완전히 다릅니다 장음을 낼 때 이미자의 바이브레이션은 인위적이지 않고 마치 중력으 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자연스 러운 것이 이미자 노래 60 여 년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가수라는 거룩한 수식어가 전혀 과하지 않은 우리에게 이 미자 선생님 같은 위대한 가수 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행운이 며 트로트 팬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