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미 - 나는 열일곱 살 (1938)

주현미 - 나는 열일곱 살 (1938)

노래 이야기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멜로디를 잘 모르는 노래가 바로 '나는 열일곱살'이 아닐까 싶습니다 1938년 박단마(朴丹馬) 선생님의 노래로 발표된 이후로 수많은 리메이크 버젼이 발표되면서 본래의 리듬과 멜로디가 변형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원곡조차 찾기 힘든 노래가 되었지요 1938년 7월 빅터레코드에서 발매된 '나는 열일곱살'은 당시 실제로 열일곱살이었던 박단마 선생님이 취입해 지금까지도 히트곡으로 남아있습니다 경쾌하고 밝은 느낌의 곡에 열일곱 소녀의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 담긴 가사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지요 "나는 가슴이 두근거려요 가르쳐줄까요 열일곱 살이예요 가만히 가만히 오세요 요리 조리로 별빛도 수줍은 버드나무 아래로 가만히 오세요 나는 마음이 울렁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예요 살랑이 살랑이 오세요 이리 저리로 파랑새 꿈꾸는 버드나무 아래로 살며시 오세요 나는 얼굴이 붉어졌어요 손꼽아 헤이면 열일곱 살이예요 어서 어서 오세요 좋은 사람이 언제나 정다운 버드나무 아래로 이리로 오세요" 묻지도 않는 나이를 굳이 말해가며 상대방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열일곱 소녀의 말은 당돌하기까지 한데요 8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재미있고 파격적인 내용입니다 1921년 개성에서 출생한 박단마 선생님은 1937년 빅터레코드의 전속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날 두고 진정 참말', '상사 구백리'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당시의 자료에 의하면 빅터레코드를 대표하는 가수로서 기생이었던 언니에게 민요를 배우면서 노래를 접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1938년 발표한 '나는 열일곱살'은 그녀에게 최고의 인기를 안겨주었고 소천하신 지금까지도 영원한 열일곱살로 남아있는 가수이기도 합니다 1956년 '아리랑 목동'을 발표한 이후, 1957년 미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손가락질 당하고 놀림받던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박단마 선생님은 결국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고 1977년 다시 귀국할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점차 사라져갔지요 특유의 비음과 독특한 창법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박단마 선생님에게 꼭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 준 분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 작곡가이신 전수린(全壽麟) 선생님이신데요 전수린 선생님의 이름을 거론하면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이애리수 선생님의 '황성옛터(황성의 적)'이지요 전수린, 이애리수, 박단마 선생님 모두 개성 출신의 음악인들로, 함께 빅터레코드에서 활동하며 깊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박단마 선생님보다 10년 먼저 출생한 전수린 선생님은 본명이 전수남으로 개성중학교, 송도고보를 졸업하고 음악교육을 받으며 바이올린을 연주하셨습니다 서울로 온 뒤에는 홍난파 선생 수하에서 음악을 익히게 되었고 정식으로 작곡을 시작하게 되지요 여담으로 1935년 전수린 선생님이 일본 방문 때 우연히 프랑스 악단의 연주를 보고 깊이 감동하여 귀국길에 아코디언을 사서 돌아오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아코디언이 처음 소개되는 시점이었답니다 전수린 선생님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반영한 '황성옛터'를 비롯, 밝은 장조 느낌의 '나는 열일곱살', 전형적인 트로트 곡인 황금심 선생님의 '알뜰한 당신' 등을 작곡하며, 이후 전개될 한국 가요역사의 기틀을 마련하셨지요 '나는 열일곱살'은 수많은 후대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지는동안 그 제목이 '나는 열일곱살이예요'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떤 제목으로 기억되더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열일곱살'의 추억이 남아있지요 그것이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이든, 친구들과의 소중한 기억이든, 가족과의 행복했던 시간이든지 지난 청춘이 주는 아련함은 우리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