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와인을 마셨을까?. (+한반도 와인의 역사)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와인을 마셨을까?. (+한반도 와인의 역사)

와인은 우리말로는 포도주라고 말하지만 와인과 포도주는 엄연히 다른 의미입니다 와인은 단독으로 표기할때 포도를 이용한 과실주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발효주 중에서도 과일을 발효한 술을 뜻하기도 합니다 단적인 예시로 블루베리 와인,라즈베리 와인,양파 와인등 포도를 이용하지 않은 발효주도 와인을 사용하곤 하죠 우리나라도 전라북도 와인의 머루와인 일팔칠구 기업의 양파와인등 과거에 비해 다양한 경쟁력을 갖춘 와인도 속속히 등장하고있죠 이러한 와인에 대해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알고 마시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의 주제는 우리나라 와인의 역사입니다 조선시대 편찬된 고려사입니다 1285년 고려 충렬왕시대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 칸이 고려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한반도 와인에 대한 공식적인 첫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원나라에서 이후에도 꾸준히 포도주를 하사하였지만, 이 포도주가 대륙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와인인지, 혹은 타국으로부터 실크로드를 타고 전해진 와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1324년 원나라의 과거시험에 합격한 고려왕실학자 안축은 현재 위구루가위치해있는 투루판지역의 사람에게 와인을 받고 답례롤 시를 낭송했다는 기록도 존재하며 이색이라는 사람은 국내에서 개최된 연회에서 포도주를 마신 감상평을 시로 읊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540년 탁청공 김유가 저술한 요리책인 수운잡방에서는 다양한 곡주와 더불어 쌀을 베이스로 포도와 함께 빚어낸 과실주가 등장합니다 당시 포도가 아닌 머루를 사용하였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적이 있지만 와인과 가장유사한 한반도 최초와인의 등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겠습니다 1653년 제주도에 표류되어 13년동안 조선에 억류당해있었던 네덜란드의 선원 헨드릭 하멜의 표류기에서는 난파당시 제주도에서 또 한번 와인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 하멜은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조선의 지휘관은 우리에게 술을 한잔씩 주었고 죽을쑤어 우리에게 대접해주었다 이에 대한 답례로 우리가 가진 레드와인과 은잔으로 보답하였다 이에 조선의 관원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텐트까지 바래다주었다 " 1868년 남연구 분묘 도굴 사건으로 유명한 독일인 상인 오페르트또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무시하고 레드와인을 비롯한 샴페인 및 양주를 밀반입하였고 "조선인들은 독주와 폭음을 즐기고 샴페인과 체리브랜드, 백포도주와 여러 브랜디를 좋아한다 다만 적포도주는 떫은맛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다 " 라고 회고하였습니다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1908년 뚝섬 원예 모범장등에서 다양한 시험 양조를 통해 머루주,딸기주등 과실을 이용한 와인제조에 성공하였고 주류업자들에게 시험결과를 통보한 기록도 있습니다 다만 포도를 이용한 와인은 당시 대한민국 포도품종 특성상 품질이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1965년 박정희 정부는 전쟁과 빈곤으로 곡물이 부족해지자 양곡관리법을 시행합니다 곡물을 이용한 주류를 생산하지 못하게 규제하였는데, 이 시기 우리나라 전통 증류식 소주 업체는 규제로 인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속에서도 과일을 이용한 주류제조는 허가되었기때문에 다양한 과실주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날에는 앞서 말씀드린 다양한 국산와인이 존재하고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와인의 역사와 근본하고는 거리가 먼 한반도 역사속에서도 꾸준히 등장한 와인 정말 재미있지않나요? 다음시간에 더욱 재미있는 영상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