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의 눈물①] 인천상륙작전 성공 필수조건 '월미도 탈환'…"네이팜탄 융단 폭격" [MBN종합뉴스]

[월미도의 눈물①] 인천상륙작전 성공 필수조건 '월미도 탈환'…"네이팜탄 융단 폭격" [MBN종합뉴스]

【 앵커멘트 】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은 6·25 전쟁의 불리한 전세를 뒤집은 성공한 작전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알려지지 않은 상당수의 민간인 희생이 존재했습니다 MBN은 나흘에 걸쳐 이를 집중 조명할 예정인데요 먼저 인천상륙작전이 있기 닷새 전인 1950년 9월 월미도로 가 보겠습니다 한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기 닷새 전인 1950년 9월 10일 새벽 콜세어라고 불리던 미 해병대 15항모전단 소속 F4U가 양 날개에 네이팜탄을 한 개씩장착하고 비행에 나섭니다 목표는 인천의 월미도였습니다 ▶ 인터뷰 : 전청봉 / 월미도 폭격 생존자(당시 17세) - "펑 소리만 하더니 그냥 불이 일어나요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더라고요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올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당시 월미도는 미군의 폭격으로 곳곳이 불에 타고 가옥은 폭격에 무너졌습니다 폭격을 피해 살아남은 주민들은 적으로 간주돼 포로 집결소로 내몰렸습니다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반나절 동안 세 차례 폭격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지금은 사용이 금지된 네이팜탄 95발이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 인터뷰 : 전갑생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 "1950년 9월 10일 이후부터 네이팜탄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부분은 초토화 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거예요 "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불리한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켜야 했고 이를 위해 월미도 점령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 인터뷰 : 최윤철 /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 - "반드시 먼저 월미도를 제압하고 다음에 인천항만으로 접안하는 단계적 작전이 돼야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월미도를 선점해야 했던 것이죠 " 생존한 주민들은 120가구 600여 명이 거주하던 마을에서 폭격으로 100여 명이 희생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MBN뉴스 한성원입니다 #MBN #월미도의눈물 #인천상륙작전의성공요인 #네이팜탄폭격 #한성원기자 ☞ MBN 유튜브 구독하기 ☞ 📢 MBN 유튜브 커뮤니티 MBN 페이스북 MBN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