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동 타령-황정자 1955년. 이 명곡 스윙의 탄생 과정

오동동 타령-황정자 1955년. 이 명곡 스윙의 탄생 과정

1955년 늦가을/초겨울 어느날 식전, 작곡가 겸 가수 한복남에게 부엌에서 밥짓던 부인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웬 사람이 마당에서 주인을 찾는다"고 말했다 나가보니 온몸에 풀검불이 잔뜩 묻은 노숙자가 서있었다 한복남이 주머니에서 지폐 1장을 꺼내 주니, 노숙자는 손을 저으며 "간밤에 술을 너무 먹어 이렇지, 나 그런 사람 아니오"라며 거부했다 양복점 경력이 있는 한복남이 훑어보니, 풀검불 묻은 오바가 아주 고급품이었다 노숙자가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내보였다 그걸 받아 본 한복남이 "♩♪♬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 ♩♪♬ "이라며 즉흥적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숙자가 펄적 뛰며 "빨리 방에 들어가서 악보를 만들자"고 했다 이 노숙자가 도미도 레코드 사장이자 작사가 야인초였다 한복남은 악보를 몰랐다 그 대신 가사가 악보나 다름 없었고 머리가 악보집이었다 그날 아침밥은 해장술 반주를 곁들인 둘의 초면 인사 자리가 됐다 도미도 레코드 사무실로 함께 출근했는데, 한복남으로서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사무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정규 직원 이외에 음악대학을 졸업한 작편곡 전문가도 여럿 있었다 사실상 무직인 이들 앞에서 한복남은 자작곡 [오동동 타령]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악보도 완성 편곡도 한복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야인초 사장이 이 노래에 적당한 여자 가수가 있다고 했다 한복남은 황정자라는 좋은 가수가 있다며 거절했다 이 생소한 이름의 여자 가수를 서울에서 찾느라 수소문에 3일이 걸렸다 취입을 하려니 문제가 생겼다 고질병에 의한 건강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가난이 겹쳐 있었다 게다가 문맹이었다 일제시대 유랑극단에서 어릴적부터 식모로 일하면서 자라 막간 가수가 됐으니 뭐든지 최저의 조건이었다 이 가수에게 쌀 1가마니에 연탄 100장을 전했다 쌀과 연탄이 제1인 시절이었다 어떻든 이렇게 해서, 명음반사에서, 명작사에 명작곡, 명가수에 의한 명곡이 탄생했다 한복남은 이름뿐인 도레미 레코드를 버리고, 유명 음반사 도미도 레코드의 전속 작곡가로 새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