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글밭] 2020.07.14일(화) ‘죽음으로 답한 삶’
[동녘글밭] 2020 07 14일(화) ‘죽음으로 답한 삶’ 박원순의 삶과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듯이 여겨집니다 그 삶과 죽음은 내게도 그대로 붙어 있으니까요 따라서 오늘은 이 ‘박원숙의 죽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 볼 참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바람이기도 합니다 한 사발의 재로 돌아가신 ‘박원순의 죽음’은 ‘박원순의 삶’을 그대로 보여 준 것으로요 님의 삶과 죽음을 제대로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가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 곁에서 서울시 행정 1부시장으로 함께 일을 했던 윤준병 의원의 느낌을 가져 옵니다 이런 저런 수많은 그 뒷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지만 그래도 바로 본 것으로 느껴지니까요 님은 조심스럽게 스스로 숨을 거둔 박원순의 ‘죽음의 까닭’을 이렇게 찾고 있읍니다 님은 박원순을 ‘순수하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라고 보았네요 따라서 고소된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고소를 당한 사실’ 그 자체를 큰 충격으로 봅니다 아마도 그 충격은 ‘너무도 크게 미안함을 느꼈을 박원순’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그 이후, 이야기되면서 입게 될 여러 님들의 상처를 줄이려는 ‘책임’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의 여러 님들은 가족을 포함하여 뜻을 함께 한 님들은 물론 고소인까지일 테지요 그 책임은 ‘죽음으로 자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의 해법‘을 몸소 실천하신 것’으로 봅니다 이 누리에는 너무도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님들이 함께 모여 삽니다 사람의 욕심을 인정하면서 그 욕심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자본주의를 바탕에 깔고요 사흘 전인 지난 토요일, ‘뻔뻠과 부끄러움’이란 제목의 글밭에서도 이미 말씀을 드렸지요 가만히 따지고 보면 이 ‘미투’는 이미 그 순수성을 잃어 가고 있다고요 사랑이 느껴질 때는 괜찮고, 돈이 느껴질 때는 괜찮지 않은 이 ‘마음이 문제’라고요 돈의 마력에 끌려 정의를, 합법을 가장한 ‘미투’로 욕심을 채우는 일들이 버젓이 횡횡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타락한 자본주의가 불을 붙이는 꼴입니다 ‘박원순의 죽음’을 통하여 이 ‘미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짚어 보아야 할 때입니다 박원순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돈의 노예로 변질된 삶이 여기저기서 독버섯처럼 번지는 이 자본주의는 여기서 끝내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한겨레의 삶인 두레 얼이 잔잔하게 배어 있는 ‘홍익인간의 누리’입니다 우주의 이치를 살펴 널리 사람에게 이로운 누리를 꿈꾸는 ‘삶의 틀’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공산주의, 자본주의에 놀아날 아무 까닭이 없다는 말씀이지요 이 둘의 좋은 점을 다 아우르는 틀은 이미 ‘우리’ 안에 다 들어 있으니까요 어쩌면 박원순이 ‘죽음으로 답한 삶’에서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갑수는 박원순을 ‘자기 욕망에 성실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았읍니다 따라서 ‘타자의 욕망을 위해 살다간 박원순’의 삶을 한사코 부질없다고 하셨지요 정말로 박원순의 삶은 부질없는 것이었을까요? ‘죽음으로 답을 한 삶’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고 여겨지네요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화요일 새벽은 저만큼 멀리 떨어져 있읍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