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MBC뉴스]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장진홍

[안동MBC뉴스]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장진홍

2015/06/04 11:34:11 작성자 : 조동진 ◀ANC▶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구경북지역 독립운동가를 탐방하는 김희곤의 독립운동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해 항일 의열투쟁의 대동맥 선상을 이어간 창여 장진홍 선생편입니다. ◀END▶ ◀VCR▶ 장진홍선생은 1895년 칠곡군 인동 지금의 구미시 옥계동에서 태어납니다. 20대 나이에 이미 민족운동에 뛰어든 그는 32살이든 1927년에 아웃마을 출신 사회주의 운동가인 이내성 선생의 영향을 받아 의열투쟁가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는 일본인 전문가로부터 폭탄제조기법을 배우고 다이나마이트와 뇌관 30개씩을 묶고 도화선을 구입하여 직접 폭탄을 제조합니다. 이곳은 대구시내 중앙로의 하나은행 대구지점 앞입니다. 1927년 10월 18일 낮 12시쯤 이 건물앞에서 70장이 넘는 대형 유리창이 폭발음과 더불어 쏟아져 내리고 그 폭약연기는 온 길을 뒤덮고 그 유리파편은 200m를 날아가서 대구역앞까지 쏟아지는 아수라장의 현장이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장진홍의거라 부르는데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거사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장진홍선생은 경상북도청과 경북경찰부,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대구지점을 공격목표로 삼습니다. 바로 이것이 일제통치기구이기 때문입니다. 폭탄 4개를 만들어서 도화선에 심지를 붙여 배송하게 되고 폭탄이 연거푸 3발이 터지면서 대폭발사건이 터진 것이죠. 일본경찰은 여기에 대하여 주모자를 색출하려고 나섰지만 그 주인공이 장진홍의사라는 것을 아무리 찾으려해도 찾지 못하자 이육사선생의 형제를 비롯하여 600명정도 되는 경상북도의 청년을 다 잡아들여 혹독하게 고문을 하게 됩니다. 거사이후 1년 4개월만인 1929년 2월 오오사카에서 당시 유명한 악덕 고등계형사 최석현에 붙잡혀 대구로 옵니다. 끝내 법원에서 사형판결이 확정되자 옥중에서 자결 순국합니다. 36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겨레앞에 또 겨레를 위하여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습니다. 선생의 펼친 의열투쟁은 안중근의거로부터 윤봉근의거로 이어지는 한국의열투쟁의 대동맥을 이어가는 그런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