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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시 세종, 효종대왕릉에 가다 3부작 1부 세종대왕릉
아나운서 : 여러분 안녕하세요 문화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문화나들이의 박상희입니다 오늘은 여주시의 대표적 명소인 세종대왕, 효종대왕릉에 찾아왔습니다 능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 약 6년간의 ‘영,영릉 유적 종합정비 사업’을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특별히 여주시의회 박시선 의장님 모시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영릉과 여주시의 문화유산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의장님, 안녕하세요~! 시청자분들게 인사부탁드립니다 의장님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주시민으로서, 여주시의회 의장으로서, 우리 여주의 문화유산에 대해 남다른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주의 대표적 명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릉을 찾아보았습니다 지난 한글날을 기해 조선시대 왕릉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한 약 6년 간의 ‘영릉 유적 종합정비 사업’이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회복되었는지 눈여겨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나운서 Q1 : 영릉이 과거의 유산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어떠한 정책들을 추진하실 계획인가요? 의장님 A1 : 영릉지역은 정확히 말하면 제4대 세종대왕릉과 제17대 효종대왕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음법칙 때문에 읽는 소리는 같지만 엄연히 한자가 다르고 능의 주인도 다른 두 릉이 있는 것입니다 외지인들 중에는 아직도 이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문화융성의 성군 세종대왕과 북벌계획의 주역 효종대왕을 모신 곳임에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물론 정치적 의도가 있기는 했지만, 영릉을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 크게 부각시킨 적이 있습니다 한글날이면 대통령이 방문했고, 다양한 문화행사가 있었고, 찾아오는 관람객도 엄청나게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제 영릉지역 복원 정비사업도 마친 상태이니 본격적으로 영릉의 문화적 가치를 부각시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글과 과학문명을 이끌었던 세종을 이어받아 조선조 태평성대와 문화융성의 거리를 재현해 보고 싶습니다 또 효종의 북벌계획의 정신을 이어받아 부국강국의 꿈으로 나라사항 역사문화테마파크를 조성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지, 예산, 인허가, 콘텐츠 다양한 측면에서 영릉일대를 관광문화 특구로 지정하는 정책에 대해서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아나운서 Q2 : 영릉 외 여주시 문화유산과 관련된 앞으로의 정책은 어떤 게 있을까요? 의장님 A2 : 여주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릉, 명성황후 생가, 신륵사 외에도 고달사지, 파사산성, 이완장군묘, 서희장문묘 등이 있고, 선사유적과 고택들도 많습니다 여기에 남한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자연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역사적, 자연적 가치는 곧 잠재적인 경제가치가 됩니다 보호하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이 알리고 가치를 공유하고 시의 발전을 위해 활용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주가 사는 길은 공장지대도 아니고, 대도시 베드타운의 소비도시도 아닙니다 문화역사테마도시, 자연환경힐링공간입니다 이를 위해 종합적인 여주르네상스 프로젝트가 필요합니다 비록 이번 임기동안은 시간이 촉박하지만, 이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여주시 집행부에서도 전향적인 여주개조 부흥운동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독려해 볼 계획입니다 아나운서 Q3 : 여주시 영릉을 포함한 문화유산과 관련해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의장님 A3 : 여주의 문화유산은 여주의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공유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주의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지키고 보호하며 그 가치를 키우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행운이자 의무이기도 합니다 우리 여주시민부터 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여주의 미래를 몇몇 정치인들이, 공무원들이 좌지우지 할 수은 없습니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강하게 나서 주셔야 합니다 여주발전에 대한 제안을 해 주시고, 필요한 제도와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거론해 주셔야 합니다 여주 시민들 스스로가 여주의 문화유산을 알아보고, 찾아보고, 연구하고, 알리는 일의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정치는 시민들을 이끌어 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시민들이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과 애정과 참여를 간곡하게 당부드립니다 아나운서 : 이렇게 세종대왕, 효종대왕릉을 포함한 여주시의 수많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부각시키고 여주르네상스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펼치고 계신대요 이제 여주시 해설사님과 함께 영릉 곳곳을 돌아보면서 그 역사와 가치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전해주신 여주시의회 박시선의장님 고맙습니다 아나운서 : 저는 지금 세종대왕릉에 더 가까이 왔습니다 오늘 세종, 효종대왕릉에 대한 모든 것 알려주실 여주시 백명옥 해설사님 나와계십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 조선왕릉이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는데요 그런 가운데 조선시대 왕 하면 제일 먼저 세종대왕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Q1 그렇다면 세종대왕릉이 어떻게 이곳 여주시에 조성되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세종대왕릉의 역사 설명해주시죠 영릉은 원래 헌릉(태종릉)의 아래에 있다가 승하하신지 19년 후 1949년(예종 원년) 여주로 천장遷葬하였다 세종 승하 후 왕권이 안정되지 않았고 적장가가 왕위를 잇지 못할 불안감이 컸고 영릉 자리에 물이 비쳤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왕릉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명당이다 이 곳 여주의 영릉이 최고의 명당자리였기에 한양에서 100리가 벗어난 여주까지 옮겨 오게 되었다 Q2 세종대왕릉이 조선시대 최초 합장릉이라고 하는데요 합장릉이 뭔가요? 또 구조 역시 특이하다고 들었어요 왕릉의 유형이 6가지인데 영릉은 조선 초 최초의 합장릉이다 세조는 왕릉을 조성할 때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간결하게 하라는 명을 하였고, 석곽, 석관을 없애고 회격으로 할 것이며, 병풍석 등을 설치하지 말고 난간석만 두르게 하였으며, 동자석주에는 십이지상을 문자로 표기하여 간소화하였고, 전체적인 상설배치양식은 국조오례의 조선 전기 기준을 따르게 하였으며 이는 향후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Q3 이곳에 오다 보니까 측우기, 혼천의와 같은 세종대 발명한 과학기구들이 있더라고요 세종대왕의 생애와 업적, 많은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주요한 업적들 알려주세요 Q4 아까 이곳에 소헌왕후도 함께 잠들어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소헌왕후의 생애도 궁금합니다 청천부원군 ‘심온’의 장녀로 1395년 음력 9월 28일 탄생 1408년 충녕대군과 혼례 1418년 세자빈 ‘경빈’에 진봉, 중전 ‘공비’에 책봉 *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사사 후 폐비논의 되었으나, 왕실 안정의 공이 있다 하여 무사하였다 세종은 왕비가 인자하고 어질어 착한 것이 만인의 표상이 되었다 평하였다고 한다 *1446년 52세에 수양대군 사저에서 승하하셨다 Q5 이곳에 직접 와서 보고, 또 선생님 말씀 들어보니까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더 느껴지는데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기까지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등록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요? 조선왕릉 42중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하고 40가가 2009년 6월 세계문화유산인 유네스코문화재로 등재되었다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단일 왕조의 능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조선 왕릉’이 유일하기 때문이며, 왕릉이 선정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유교적인 예법에 따라 의례도 현재까지 원형을 보존을 하며 행해지고 있다 왕릉의 주변이 환경적으로도 우수하고 역사, 의례, 기록, 건축물 등이 후대에 길이 남겨 보존할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관계자들은 ‘신들의 정원’이라 표현하고 있다 출처 : 한국언론포털통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