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한국사 I 050 대원군, 시신 없이 명성황후의 장례를 치르다

영상한국사 I 050 대원군, 시신 없이 명성황후의 장례를 치르다

1882년 6월, 구식군대의 반란인 임오군란이 일어난다 신식군대 별기군과의 차별과 밀린 급료에 대한 불만이 터진 것이다 성난 군인들은 경복궁에 난입해 자취를 감춘 명성황후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이 일본식 군사제도를 도입한 민씨 정권에 있다고 생각했다 사태수습을 위해 고종은 흥선대원군을 불러들였고, 다시 권력의 중심에 선 대원군은 왕비의 국상을 선포했다 명성황후는 무관 홍재희의 도움으로 장호원에 피신한 상태였는데, 대원군은 행방이 묘연한 명성왕후를 죽었다고 선언하고, 시신도 없이 옷만으로 장례를 진행한 것이다 대신들은 왕비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고 국상을 치르는 것을 반대했지만 대원군은 강행했다 죽음이 선포되고 나면 다시 왕비로 복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갈등이 폭발한다 이는 조선이 근대화로 나가는 길에 큰 장애가 된 사건이었다 또 청, 일본 등 외세의 개입을 불러온 계기가 되고 말았다 #임오군란#명성황후 #실종사건#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