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에 대하여]  "외국어 방언만이 진짜라고 하는 분, 꼭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인바이블 말씀사역

[방언에 대하여] "외국어 방언만이 진짜라고 하는 분, 꼭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인바이블 말씀사역

시청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배경 음악 출처 : Music Copyright ⓒ Christian BGM All Rights Reserved 제목 : “주님은 신실하고” 링크 : #인바이블_말씀사역 #크리스천_신앙_성장을_위한_채널 얼마나 전에 한 분이 댓글에 이런 글을 다셨습니다 “쯔쯔쯔 성경 어디에 랄라라 방언과 따다다 방언이 나오나? 처음 오순절 날 방언을 받았을 때는 이방 언어를 하는 거였다고 성경에 나온다 즉, 방언은 다른 나라 말이다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 분 말씀처럼 성경 어디를 찾아봐도 방언 중에 날라라 방언이 있고, 따다다 방언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렇게 성경에 나오지 않은 랄랄라 방언, 따다다 방언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방언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이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앞에서 댓글을 주신 분은 방언에 대해 말을 하면서 오직 다른 나라의 말, 즉 다른 사람이 알아 듣는 외국어 방언만이 진짜 방언이고 다른 방언은 문제가 있는 방언처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럼 여러분, 이 분 말씀처럼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외국어 방언만이 진짜 방언이고 다른 방언들을 가짜이고 잘못된 방언일까요? 그러나 여러분, 사도 바울은 성경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방언은 이런 식으로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방언이 있다고 말입니다 [고전12:10]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여러분 사도 바울이 방언에 대해 뭐라고 말을 합니까?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각종 방언이 있다고 말을 하지 않습니까?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어떤 분들 중에 외국어 방언만이 진짜방언이고, 나머지 방언은 가짜이며 잘못된 방언이라고 가르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에서 댓글을 주신 분도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방언에는 “각종 방언”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각종 방언이 있다고 말을 하는데, 그럼 이런 방언에는 어떤 방언들이 있을까요? 첫 번째로 앞에서 댓글을 주신 분의 말처럼, 방언 중에는 외국어 방언이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마가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방언이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 임했던 방언에는 어떤 특징이 나타납니까? 이때 임했던 방언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이 방언을 알아 듣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2:8,11]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여러분 우리가 오순절마가다락방에 임한 방언을 통해 볼 수 있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시 오순절을 지키러 온 외국에 살던 유대인들이 방언을 자신이 살고 있던 나라의 말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때의 방언은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던 외국어 방언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우리 선교팀이 현지인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현지인 말을 몰랐기에 머리에 손을 얹고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현지인 분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왜 그런지 궁금해졌고, 기도 후에 통역을 통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딸아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내가 너의 상황을 다 안 단다 내가 너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이 사람들을 보낸 거란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저희는 단지 방언으로 기도했는데, 이 분은 이 말을 알아들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듯 방언 중에는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외국어 방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외국어 방언은 주로 어느 때 나오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시키기 원하실 때, 외국어 방언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오순절마가다락방에서 방언을 할 때, 외국어 방언이 나왔느냐? 이 외국어 방언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큰 일 행함을 듣게 함으로 이들을 구원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현지인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 현지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분으로 하여금 방언을 알아 듣도록 외국어 방언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듯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하시기 원하실 때, 이렇게 외국어 방언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언에는 이 외국어 방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각종 방언 말함이 있다고 말했듯 외국어 방언 이외에 또 다른 방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방언은 어떤 방언이냐? 우리는 이 방언을 고린도전서 14장을 통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여러분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 말씀에 기록된 방언은 어떤 방언입니까? 외국어 방언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방언이라면, 이 방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즉, 내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방언과 외국어 방언에는 어떤 차이점가 있느냐? 이 방언은 하나님께 하는 방언이므로, 알아 듣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방언이 통변이 된다면 알아 들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방언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언이기에 알아 듣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언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도시간에 하는 방언인 것입니다 반면 외국어 방언은 사람을 구원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사용하는 방언이기에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외국어 방언만 진짜 방언이고 다른 방언은 가짜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면 이런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각종 방언 말함”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이고, 또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방언을 무시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주위에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이지 못한 것이기에 우리가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각종 방언 중에는 우리가 방언 기도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방언들이 있습니다 이 방언이 바로 랄라라 방언, 따다다 방언, 새노래 방언과 같은 것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방언을 받고 방언 기도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나오게 되는 방언이 어떤 방언입니까? “랄랄라” 방언 아닙니까? 그럼 왜 방언을 시작할 때 이 방언부터 나오기 시작하느냐? 그것은 이 방언이 내 영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 주는 방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방언을 받았을 때, 일반적으로 이 랄랄라 방언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분들은 이 방언을 “애기 방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속해서 골방에서 기도를 하다보면 또 경험하게 되는 방언이 있습니다 이 방언이 바로 “따다다 방언”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방언은 주로 우리가 어느 때 경험을 하게 되느냐? 중보기를 할 때, 특별히 견고한 진(고후 10:4)들을 파쇄하는 기도를 할 때, 악한 영을 공격하며 영적 전쟁을 하는 기도를 할 때, 주로 이 방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 방언을 “전투 방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더 깊어지면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게 될 때, 새노래 방언이 나오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듯 우리는 방언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할 때도 사도 바울이 말하는 “각종 방언 말함”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에서 외국어 방언만이 진짜이고 다른 방언은 가짜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는 이런 분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분들이 비성경적인 것을 가르치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 이런 분들의 주장을 따르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자리에 설 수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칫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 바울이 방언을 금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내 생각과 경험으로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를 푸는 자리에 서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