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의 정복전쟁과 강압적인 통치행위에 해코지를 당한 사람은 누구일까 ?

아시리아의 정복전쟁과 강압적인 통치행위에 해코지를 당한 사람은 누구일까 ?

전쟁이란 무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늘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수밖에 없는 잔인함과 참혹함이 따라올수 밖에 없는데 메소포타미아라 불리는 땅에서 오랫동안 정체성을 잃지 않고 국가단계를 유지했던 아시리아가 벌인 정복전쟁은 그 정도가 심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고대에 벌어진 전쟁 대부분이 동물의 세계에서나 볼법한 투쟁의 결과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유독 아시리아 왕들의 통치기록이나 부조물은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특별한 의미를 전달했다고 보여집니다 아시리아는 족장시대를 거쳐 기원전 2천년경 고대도시 아슈르를 거점으로 신권과 왕권이 일치된 신정국가로 역사 전면에 등장하였으며 철기시대가 시작된 기원전 천년경부터 수백년동안 강력한 군사력을 무기로 당대 세계관의 패권을 차지했던 국가입니다 앗시리아가 강력한 국가였다는 증거는 수도였던 아슈르 니네베 칼후(님루드) 두르-샤루킨이 발굴되면서 확인되었는데 니네베 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된 기록물속에는 전문 서기관이 작성한 역대 왕들의 통치기록물이 발견되었으며 교차검증을 통해 수쳔년의 역사가 복원되고 퍼즐이 맞춰지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는점은 유적 발굴을 주도한 영국에서 문화재를 독점적으로 약탈했지만 남겨진 유적과 유물들은 is무장세력들이 뜯어내 암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불법거래된 유물 대부분은 미국등 서방국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앗시리아의 통치 연대기를 살펴보면 어느순간부터 잔인한 보복 기록들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반란을 진압한 후 기록되었으며 반역자는 완전히 사라져야 할 대상이자 시신을 욕보이고 신상을 파괴하는 행위도 최고의 신인 아슈르가 내린 율법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시리아 왕들이 매년 군사를 일으켜 원정을 떠나는 행위는 항복한 도시들을 순회하며 조공과 충성맹세를 다시 확인하는 절차였으며 만약 반란을 도모한 경우 잔인한 보복과 함께 도시를 파괴하기도 하였는데 이또한 아슈르의 율법이자 숙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특히 아슈르의 율법을 집행하는 아시리아왕의 통치행위는 대부분이 군사원정을 통해 달성되었을 정도로 세속적이었던 반면 동시대 문명세력인 바빌론 왕은 신전건설과 제사문화를 주도하는 방식으로 통치행위가 이루어졌다는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슈르의 율법으로 포장된 아시리아의 잔혹한 보복행위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 오늘은 정복전쟁을 주도한 앗시리아 왕들의 통치기록을 바탕으로 제국건설과정을 살펴보고 비문과 부조속에 나타난 고고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심한 헤코지를 당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알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