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땅끝순례문학관]  여성해방을 노래한 페미니스트 시인 고정희(高靜熙, 1948~1991) By 문학관TV

[해남 땅끝순례문학관] 여성해방을 노래한 페미니스트 시인 고정희(高靜熙, 1948~1991) By 문학관TV

고정희 시인은 1948년 1월 17일, 전남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아버지 고양동 씨와 어머니 김은녀 씨 사이의 5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성애(聖愛)이다 어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다 전형적인 농촌의 대가족 속에서 자란 시인은 삼산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거의 독립적으로 성장하였으며 정규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학으로 공부했다 형제들이 많아 제대로 학교에 갈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녀시절부터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고정희 시인이 14살 되던 때 시집와서 시인이 자신을 어머니처럼 따랐다는 큰 올케의 회상에 따르면, 그녀는 거의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기도 하고 불을 아궁이에 지피다가 불이 꺼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책만 읽다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고정희는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해남에서 '해남문학동호회'와 「월간해남」(1968∼1969) 기자로 활동하며 홀로 문학 수업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967년에는 《새농민》지에 장만영 시인의 추천으로 시가 실리기도 했으며, 이듬해 해남의 ‘현다실’에서 시화전을 갖기도 했다 이즈음 그는 목포지역의 젊은 문인들로 이루어진 '흑조' 동인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부터 《새전남》,《주간전남》, 월간《백조》,《소녀생활》등에서 기자 생활을 거쳐 1974년부터 광주 YWCA 대학생부 간사로 일했으며, 1975년 박남수 시인에 의해『현대시학』에 「부활 그 이후」,「연가」 등이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리고 1979년 서른한 살의 만학으로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허형만, 김준태, 장효문, 송수권, 국효문 등과 함께 《목요시》 창간동인으로 활동한다 그 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여성문학인위원회 위원장과 시창작 분과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1984년부터는 기독교 신문사,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판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86년부터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으로 일하면서 여성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고정희 시인이 여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대안문화 운동단체인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으로 활동하면서이다 《또 하나의 문화》는 기존의 문화를 남성중심주의 문화로 규정하고 남녀가 평등하고 건강한 벗으로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며 대안적 문화운동을 표방한 단체이다 사회학․인류학․여성학 등을 전공한 동인들과 더불어 새로운 대안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데 의기투합한 고정희 시인은 여성 문화 무크지 『또하나의 문화』를 창간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모아둔 여성문제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사 새로 쓰기’ 작업을 구체화하는 것도 『또하나의 문화』활동 성과이다 1988년에는 여성문제를 대중매체를 통해 공론화하는 데 이바지한 여성 정론지 《여성신문》의 주간을 맡아 신문 창간의 산파 역할을 해냈다 시인은 이때 여성 억압의 다양한 현장들과 부딪치는 기회가 되었다 고정희 시인은 날마다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썼다고 한다 “오늘 하루를 생애 최초의 날처럼, 또한 마지막 날같이”를 생활 지침으로 삼았다 1990년 필리핀 마닐라의 아시아 종교음악 연구소 초청으로 아시아 시인 및 작곡가들이 모여 1년 동안 벌인 ‘탈식민지 시와 음악 워크숍’에 참여하여, 체류 중 ‘밥과 자본주의’, ‘외경읽기’ 등 연작시를 창작한다 1991년 귀국하여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사』를 편집 제작하였으며, 그 해 6월 8일 『또 하나의 문화』 월례논단에서 “여성주의 리얼리즘과 문체혁명”이란 주제로 발표를 마치자마자 시의 모태가 되어 온 지리산으로 산행을 간다 그러나 느닷없이 쏟아진 폭우에 뱀사골에서 실족, 43세에 삶을 마감하였다 고정희 시인은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평민사)를 간행한 이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실락원 기행』(1981, 인문당), 장시집『초혼제』(1983, 창작과 비평사), 『이 시대의 아벨』(1983, 문학과 지성사), 『눈물꽃』(1986, 실천문화사), 『지리산의 봄』(1987, 문학과 지성사), 장시집『저 무덤 위에 푸른 잔디』(1989, 창작과 비평사), 『광주의 눈물비』(1990, 도서출판 동아), 『여성해방 출사표』(1990, 동광출판사), 『아름다운 사람하나』(1991, 들꽃세상) 등 10권의 시집을 남겼으며, 유고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 창작과 비평사)와 한국대표시인 100인선집 중 90번째 시선(詩選)인 『뱀사골에서 쓴 편지』(미래사, 1991)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남도의 가락을 접목시킨 『초혼제』로 83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정희 시인은 43세의 아까운 나이로 요절했지만 짧은 생애 동안 11권의 시집을 남겼다 대부분의 시가 80년대 쓰인 것들로, 이 시기 시인의 삶은 전적으로 시작(詩作)에 바쳐졌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기독교 관계 일과 여성운동, 작가로서의 다양한 형태의 현실참여를 통해 시인으로서, 문화 및 사회운동가로서 남다른 활동을 열정적으로 전개하였다 ‘불의 시대’라고 일컫는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시인은, 자신과 주변사람, 사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선명하게 파악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일관성 있게,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실천한, 시와 삶이 거의 일치한 보기 드문 시인이었다 고정희 시인은 우리시사 속에서 여성문제를 최초로 폭넓게 탐구한 여성주의 시인으로, 거대한 스케일과 왕성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역사에 대한 준열한 증언을 했던 민중시인으로, 또 기독교 정신과 생명에 대한 도덕적 순수함으로 처연한 서정성을 보여준 서정시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 [ 사단법인 한국문학관협회 ] 공식 홈페이지 : 공식 블로그 : 87개 문학관이 가입되어 있는 사단법인 한국문학관협회는 문학관 운영 활성화 및 지역 주민의 문학 향수 기회를 넓히고, 프로그램 상호 공유를 통한 우수 문학 프로그램 개발, 문학관 운영 인력 양성, 문학관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 및 홈페이지 개설을 통한 전국 문학관 홍보 및 협력 네트워크 운영을 목적으로 지난 2004년 04월 설립 되었습니다 현재는 법인화를 통해 국민과 회원문학관을 위한 공익적 사업을 확대하고 한국문학의 진흥과 문학 유산의 보존 ,전시 ,교육, 홍보를 지원하는 단체로 성장 있으며 나아가 지역민과 일반시민 청소년의 정서함양에 도움이 되는 지역문학관을 지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입니다 [ 협회사업 ] 1 문학관운영을 위한 지원사업 - 회원문학관의 홈페이지 운영 및 보완을 위한 지원 사업 - 전시 자료, 문인유물전시, 보존 시설, 수장고 확충을 위한 지원 사업 - 지역문학관 특성화 프로그램 지원 사업 주관 (2018~) - 문학관 상주작가 지원 사업 주관 (2019~) 2 지역주민의 문학 향수 기회 확대 - 사단법인 한국문학관협회 주관의 행사기획 - 각 문학관 별 프로그램 지원사업 시행 3 우수프로그램 상호교류 - 국내 문학관 탐방 사업 실시 - 해외 선진 문학관 및 문학 시설 관련 연수 사업 실시 4 문학관 운영 인력 양성을 위한 워크숍 개최 - 문학관 실무자를 위한 사업설명회 및 워크숍 개최 (연 2회 이상) - 문학관 업무 실무자 운영 능력 향상을 위한 위탁교육 5 문학관 소개 자료 및 홍보물 제작 - 회원 문학관 홍보를 위한 홍보책자 및 자료집 발간 - 문학관 TV를 통한 SNS홍보 강화 및 정보 공유전달 6 문학관 건립을 위한 지원 사업 - 설립 준비 및 과정 자문 및 관계 당국 담당자 공유 - 설립 후 운영 활성화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