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사마천대학 : 『사기』 전문가 과정(제47강 '개혁은 필요성이 아니라 당위성이다 2-1')
47,48강은 개혁 이야기입니다 역사상 개혁의 거부한 나라는 예외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개혁은 필요성이 아니라 당위성입니다 개혁의 성공 요인에 관한 글 하나를 공유합니다 개혁의 성공의 요건 - 인재 정책이 개혁 성패의 첫걸음 사마천은 한 나라의 흥망에는 어떤 조짐이 나타나는데, 나라가 흥할 때는 군자가 기용되고 소인은 물러나는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나고, 나라가 망할 때는 현인은 숨고 난신들이 귀하신 몸이 된다고 간파했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나라의 “안정과 위기는 어떤 정책을 내느냐에 달려 있고, 존망은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일갈했다 나라의 존망이 인재기용에 따라 좌우된다는 요지다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을 갖고 있어도 그 정책을 사심없이 일관되게 추진할 정직하고 굳센 인재가 없다면 그 정책은 그림의 떡이다 그렇다면 개혁에 따른 인재기용의 원칙은 어때야 할까? 이와 관련해서는 기원전 7세기 중반 서방의 낙후된 진(秦)나라를 중원으로 진입시키고 일약 강국으로 변모시킨 목공(穆公)의 인재정책이 눈길을 끈다 목공은 진나라가 궁벽한 곳에 위치한 탓에 중원의 선진 문화와 제도 및 인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과감한 인재정책을 택한다 말하자면 중원의 인재들을 발탁하여 선진문물을 흡수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나라의 국정을 전반적으로 개혁한 것이다 이를 위해 목공은 대담한 인재 기용책을 실행했다 이것이 소위 ‘사불문(四不問)’ 정책이라는 것인데, 지금 보아도 대단히 획기적이었다 ‘사불문’이란 말 그대로 네 가지를 따지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 네 가지란 민족(종족), 국적, 신분, 연령이었다 즉, 이 네 가지를 따지지 않고 유능하면 누구든 기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목공은 이 ‘사불문’ 정책에 입각하여 우(虞)나라의 현자인 백리혜를 전격 대부로 발탁했다 더욱이 당시 백리혜는 노예 신분이었으며 나이도 60을 훨씬 넘은 노인이었다 백리혜는 그 보답으로 다양한 인재를 목공에게 추천했고, 목공은 이들의 힘을 빌려 춘추시대 패자로 급부상했다 이로써 후진국 진나라는 일약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목공의 파격적인 인재정책의 효과는 진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끄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목공의 ‘사불문’은 그 후 진나라 인재정책의 근간이 되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다양한 인재들을 수혈 받았고, 이것이 400년 뒤 천하통일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기초 역량으로 작용했다 2천 600여 년 전 진 목공의 인재정책에 견주어 지금 우리의 인재정책은 어떤 모습인가?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외부 인재를 영입하겠다고 소란을 떨고 있다 마치 내부에는 인재가 전혀 없는 듯 호들갑들이다 인재는 내부에만 있는 것도, 외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내부적으로는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을 가꾸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사회적 통념이나 기득권을 초월하여 인재를 모실 수 있는 활짝 열린 마인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기득권, 학연, 혈연, 지연, 교회연 따위를 따지는 망국적 사고방식으로는 결코 개혁에 성공할 수 없다 목공과 같은 개방적 인재정책이야말로 모든 개혁의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사실을 단단히 유념해야 할 때다 #사마천대학 #개혁 #개혁은_당위성 #개혁과_혁명 #인재 #좀_알자_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