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1세, by Wikipedia / CC BY SA 3 0 #272년_태어남 #337년_죽음 #4세기_로마_황제 #4세기_동로마_황제 #로마_제국의_집정관 #콘스탄티누스_왕조 #아나톨리아의_로마_가톨릭_성인 #비잔티움_제국의_성인 #동방_정교회_성인 #루터교_성인_달력에_표시된_사람 그리스 왕국의 국왕에 대해서는 콘스탄티노스 1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콘스탄티누스 1세(라틴어: 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272년 2월 27일 - 337년 5월 22일)는 중기 로마 황제(재위 306년 - 337년)이다 흔히 기독교사에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통칭하며, 동방 정교회는 모두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성 (대) 콘스탄티누스(그리스어: Μέγας Κωνσταντίνος, 라틴어: Sanctus Constantinus Magna)로 호칭한다 306년 7월 25일 브리타니아의 요크에서 병사들에 의해 군주로 추대되어 죽는 날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첫번째 기독교인 로마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치세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하여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사실상 정식 종교로 공인했다 또한 교회의 압류된 재산을 돌려 주고 이에 대한 국가의 보상을 정했다 그는 또한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기독교의 발전에도 기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324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Nova Roma)’로 공표하고 330년 공식적으로 로마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였다 337년, 그가 죽자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개명했고, 세계 최초의 기독교 도시로서 이후 천 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존재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272년 또는 273년 2월 27일 로마 제국의 모이시아 수페리오르 속주(현재의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의 나이수스에서 장군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 그의 첫째 부인 성녀 헬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성녀 헬레나는 여관 주인의 딸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92년 아버지는 헬레나를 버리고 제국 서방 구역의 정제인 막시미아누스의 딸인 테오도라와 결혼했다 아버지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가 사두정치체제에서 2명의 부제 중에 하나로 임명된 직후 젊은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정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휘하로 들어가 니코메디아에서 복무했다 305년 2명의 정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은퇴하고 콘스탄티우스가 막시미아누스의 뒤를 이어 서방의 정제로 승격하게 되자 콘스탄티누스는 즉각 니코메디아를 떠나 갈리아에 있는 아버지의 휘하로 들어갔다 부제에는 세베루스와 막시밀리아누스 다이아가 추대되었는데 사실상 부제의 위치(즉, 정제의 아들)에 있었던 콘스탄티누스와 막시미아누스의 아들인 막센티우스는 권력에서 소외된 셈이었다 1년 후인 306년 7월, 브리타니아 원정에 나섰던 콘스탄티우스가 에보라쿰(지금의 요크)에서 병사하자 그의 휘하의 장병들은 즉각 콘스탄티누스를 정제로 추대하였다 병사들에 의한 콘스탄티누스의 정제 승계는 당시 사두정치 체제 아래에서 적법성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동방 정제인 갈레리우스에게 자신의 권좌승계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였고, 갈레리우스는 콘스탄티누스가 아버지의 영토를 승계하도록 하되 부제로 인정하고 서방 정제로는 세베루스를 임명하였다 제국 내에서 콘스탄티누스의 관할 구역은 히스파니아, 브리타니아, 갈리아, 그리고 게르마니아 지방이었다 이로써 그는 중요한 라인 강 방위선의 강력한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갈리아 지방은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 중에 하나였으나 이른바 제3세기의 위기 동안에 인구는 소실되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306년부터 316년까지 10년 동안 콘스탄티누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라인 강 방위선을 굳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