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꽃피는여수바다 (모정의 뱃길 영화주제가 1966년 지구 레코드 LM 120112)](https://poortechguy.com/image/lrIiO97uLzc.webp)
이미자-꽃피는여수바다 (모정의 뱃길 영화주제가 1966년 지구 레코드 LM 120112)
이 노래는, 백영호 작곡집 [ 불사조 / 동숙의 노래 ] [ 1966 지구 레코드 LM 120112 ]에 실려 있는 노래입니다 꽃피는 아침이나 물새우는 저녁이나 나룻배에 딸을 태워 글공부 시키고져 어기여차 어기여차 외딴섬에 살아도 여수바다 푸른 물에 노를 젓는 어머니 글 배워 누구주랴 아는것이 힘이란다 어머님은 못 배워도 딸 하나 훌륭하게 어기여차 어기여차 비바람이 불어도 육년이라 그 세월에 모정 뱃길 삼만리 Side A 1 불사조 (강영철) 2 꽃피는 여수바다 (이미자) 3 집없는 서름 (강영철) 4 봄은 오는데 (이미자) 5 추억의 진주 (남강수) 6 떠나렵니다 (문주란) Side B 1 동숙의 노래 (문주란) 2 최후전선 180리 (쟈니부러더스) 3 봄이오는 고갯길 (문주란) 4 첫사랑이기에 (남상규) 5 아름다운 황혼 (박재란) 6 추억만 남으리 (후랑크백) 한국일보 이문희 기자에 의해 1962년 3월 14자 신문에 소개된, 박승이 정숙현 모녀에 관한 일화는 같은 해에, 그 사연을 소재로 제작된, 모정의 뱃길'이란 영화와 황금심과 백설희가 함께 부른 그 주제가 사랑의 뱃길 삼만리란 노래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 노래 : 꽃피는 여수바다 2 가수 : 이미자 3 작사 : 천 봉 4 작곡 : 백영호 5 노래 사연 이 가요는 육영수 여사와 전남 여수앞 바다 외딴 섬에 살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천봉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가 노래 한 것임니다 5 16혁명 초기의 일이다 육영수 여사는 남부지방으로 시찰을 떠나는 남편에게 전남 여수에 가시거든 한 어머니를 만나 전달해 달라며 한통의 편지를 건네었다 여수 앞바다 외딴섬에 사는 한 소녀의 어머니였다 외딴섬에서 목포까지 20리 바닷길을 나룻배에 딸을 태워 통학을 시킨 어머니였다 노 젓는 어머니와 단발머리의 초등학생 소녀 눈비가 오고 풍랑이 와도 모녀의 나룻배는 6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었다 그 거리가 6년동안에 3만 4천리라니 졸업식날, 학교에서는 6년 개근상을 탄 소녀의 어머니에게 장한 어머니상을 드렸다 친구와 아우들과 선생님과 정든 교실과 한꺼번에 헤어지는 마지막날은 나룻배 모녀의 사연으로 더욱 숙연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졸업식의 노래’ 첫구절처럼 소녀의 졸업장이 빛나는 것은 그 어머니의 지극정성과 그것도 학교 문턱을 넘어본 사람이 없는 외딴섬에서 처음 생긴 남다름에 있었다 섬에 집이라곤 세 가구에 스무명 안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작은 통통배조차 오지 않는 곳이라 섬사람들은 장을 보거나 다른 볼일을 보러 나룻배로 육지를 건너다니곤 해서 아이들이 커도 학교에 보내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비록 딸자식이지만 가르쳐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버지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딸을 학교에 넣어본들 20리나 되는 바닷길을 무슨 수로 왕래하느냐는 것이었지만 모진 결심으로 딸을 입학시키고야 말았다 전기도 시계도 없는 섬마을에서 새벽어둠에 딸을 깨워 밥을 먹이고 나룻배를 저어 학교에 보내고, 공부가 끝날 때면 다시 가서 데려오곤 했다 어머니의 나룻배는 강풍이 불어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어머니의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병든 몸이라서 농사를 도맡아 했다 농번기에는 소를 빌려 논밭일을 하고, 장이 서는 날에는 채소를 팔아 생필품을 사고 아버지의 약도 사왔다 그래도 어머니는 공부하는 딸이 대견스럽기만 해서 육신의 고달픔을 모르고 6년 세월을 훌쩍 넘겼고, 그 세월 동안 모정의 뱃길을 손꼽아 보니 3만4천리를 헤아렸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그렇지 않아도 눈물나는 졸업식에 소녀도 울고 어머니도 울고, 모녀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1962년 매서운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 목포의 한 초등학교 졸업식은 신문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한국일보 2월14일) 육영수 여사는 신문기사를 읽고 그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던 것이다 박정희 의장은 여수에 가서 이 가난한 섬의 모녀(어머니 박승이, 딸 정숙현)를 만났다 육여사의 편지를 전하고, 그 어머니의 굳은살 배긴 손을 잡아주며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40년 후 한국일보는 딸 정숙현씨의 글을 게재하면서 모녀의 뒷소식을 전해 다시 한번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다음은 2004년 7월8일자 한국일보에 게재된 정숙현씨의 글이다 모정의 뱃길’ 주인공 정숙현씨 나는 모른다, 물결 위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몇 억겁이 지난 후의 이 파도 위에도 한 오라기 주름살이 굽이칠까 살을 에이는 어머니의 뱃길 따라 왜 오고 갔는지를 나는 모른다 깊고 또 깊은 곳에 남아 있거라 물보라가 그리는 한 장의 초상화 아, 나의 어머니 모정의 뱃길 굳이 거창하게 시(詩)라고 말하지 않아도 좋다 단지 물길처럼 마음 또한 이렇게 흐르는 것을 1956년, 모두가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 초등학교 6년을 졸업한다는 것은 지금의 대학을 졸업한다는 것보다 더욱 귀한 일이었다 그것도 스무명이 채 못 사는 자그마한 섬마을 출신의 여자아이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말이 좋아 섬마을이지, 내가족을 포함해 겨우 세가구가 살았던 그섬에서는 생계를 위해 약간의 채소와 나물을 육지에 팔러 나가기 위해 이용했던 나룻배 한 척만이 외부를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어머니는 남들이 다 자는 깊은밤,달빛에 의지해 혼자 노젓는 방법을 익히셨다 병중인 아버지와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오랜 세월 동안 배우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여기신 어머니는 절대로 딸에게 문맹을 대물림할 수 없다고 결심하셨다 내 어머니 박승이는 그렇게 6년간 전남 여천군(현재 여수시) 가정도에서 목포까지 20리 바닷길 노를 저었다 시계는커녕 수탉도 없던 새벽, 어머니는 오직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로 그날의 날씨를 가늠하며 조각배를 띄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태풍 사라호로 산산조각이 난 배의 파편을 안고 통곡했던 어머니, 한겨울 추위에 갈라진 손등으로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파도를 헤쳐 나가던 어머니였다 말로는 표현 못할 6년의 세월 마침내 졸업식 날이었다 어머니는 박수갈채와 울음바다 속에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우리의 사연을 취재했던 한국일보 이문희 기자로 인해 ‘모정의 뱃길 3만4천리는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지며 우리 모녀는 한국일보와 인연을 맺게 됐다 1962년 2월14일자로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그때 받은 격려 편지는 국내외에서 하루200여통 이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정의 뱃길’이란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졌고 어머니를 소재로 한 노래(필자 주이미자의꽃피는 여수바다)도 불려졌다 라디오 연속극까지 만들어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여수에 내려와 어머니와 나를 격려하며 장학금을 주던 일을 잊을 수 없다 그후 나는 여수에서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대학(성균관대 국문학과)을 나왔다 이제 아이 세 명을 키우는 나는 당시의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다 딸 가족을 위해 새벽 기도를 다녀온 후 낮은 목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 어머니의 얼굴은 마냥 평화롭다 내가 한석봉이나 이율곡이나 맹자처럼 훌륭하지 못한 탓으로 내 어머니가 그들의 어머니처럼 길이길이 기억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이젠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어머니를 기억해 이런 지면을 통해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의 글을 올릴 수 있게 해 준 한국일보에 감사한다 나 또한 어머니의 발끝에도 전혀 미치지 못하나마 당신의 모습을 닮으려 한다 이제 67세가 된 정숙현씨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서 아직도 정정한 90세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1986년부터 공생복지재단 산하 서울특별시립 한남직업전문학교 미용과 교사로 일하고 있다 사진 왼쪽위는 1962년 노를 젓는 어머니와 어린 딸 왼쪽아래는 모녀를 만난 박정희 의장 오른쪽은 40년후의 박승이, 정숙현 모녀 당시와 그후의 기사들을 다 모아놓고 가끔 함께 읽곤 한다고 위의 박정희 의장과 모녀의 사진은 사나운 풍파도 막지 못한 강한 모정, 섬마을 소녀의 가슴 부푼 꿈과, 그리고 고난을 딛고 일어나고자 하는 지도자의 의지가 함께 만남을 보여주고 있다 육영수 여사의 편지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어머니의 지극정성에 감사를 전하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었으리라 어머니들 끼리만 아는 이야기도 있으리라 [참고] 당시에 이사연을 흠미한 노래가 이 노래 말고도 탄생한 노래가 가수 동방성애가 부른 [모정은 파도건너 삼만사천리]란 노래도 있었구요 황금심 여사님이 부른 노래도 있슴을 알림니다 (글,문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