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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본철교수-조용기 성령론과 하나님의성회-성령론-성령
필자는 결론적인 관점에서 앞으로 하나님의성회 교단들이 신학적 일치를 위해 함께 고민하며 풀어가야 할 성령론의 논제들을 제시하려 한다 그것은 방언 문제, 영산의 실존적 영성의 자리, 그리고 성령세례 강조의 전통에 대해서이다 이를 위해 각 논제별로 그동안 영산이 걸어온 길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떤 영향을 남겨주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이에 대한 신학계의 반향이나 평가는 어떠했는지를 또한 소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내용들을 가지고 앞으로 하나님의성회 교단들이 함께 논의해야 할 주제들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방언 문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영산도 역시 공식적인 신앙으로서는 성령세례의 첫 증거로서의 방언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이전에 비해 방언에 대한 설교는 매우 드물게 하고 있다 이러한 영산의 실제적 변화 속에는 그의 방언에 대한 최근까지의 함의가 농축되어 있다고 본다 방언이라는 주제를 잘 다루지 않는 이유 중에는 영산이 1970-80년대 성령론 논쟁의 시기를 거치면서 폭넓은 복음주의적 성령론의 합의점을 인식한 점도 있고, 또 1980년대 이후 ‘제 3의 물결’의 확산으로 인해 방언을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이기도 하다 Bonjour Bay(배본철), “Glossolalia in Korean Christianity: An Historical Survey”, 245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가 지속적으로 국내외의 타 교단 신학자들을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로 초청해 성령론에 관한 광범위한 신학적 전통을 많이 접한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활동들은 영산의 방언에 대한 신념이나 신학적 해석을 좀 더 신학적으로 보편화시켜 준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게 최근에는 하나님의성회 목회자들 사이에 방언을 성령세례 받은 첫 표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성령의 여러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가 점차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전에는 방언에 대해 비판적으로만 보던 개신교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이를 긍정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받는 일이 성령세례의 내용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 성령의 나타남과 은사들을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은사들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등, 배본철, “한국 오순절 성령운동의 역사와 전망: 성령론 논제들의 발생과의 연관성”, 45-46 성령론 분석의 새로운 틀을 추구하는 경향성이 최근에 여러 신학 전통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그동안 은사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만 해석하던 개혁주의신학계에도 새로운 시각적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고 본다 이처럼 방언에 대한 포용적인 시각과 함께 또 방언을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 보는 시각이 신학계에 확산되어오는 가운데, 그렇다면 방언에 대해 가장 긍정적인 신념을 보여주었던 하나님의성회 교단들의 신조와 교리들은 현재 방언에 대해 어떻게 표명하고 있을까? 먼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에서는 성령세례와 연관된 방언에 대해, “성령세례의 증거: 성령세례의 처음 증거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며 증거의 방언은 은사의 방언과 본질은 같으나 그 목적과 역사는 다르다 (행 2:4)”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홈페이지, “교리”, (2016 3 25) 고 방언의 교리를 전통적인 어조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비해 예수교대한하나님의성회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의 교리에는 모두 방언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는 것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방언에 대한 논의를 신학적으로 전개하는 일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방언이 성령세례의 첫 표적인가 아닌가, 참 방언인가 거짓 방언인가, 사도시대 이후에도 존재하는가, 이런 방언에 대한 논의는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에 들어와서는 방언에 대한 뜨거운 공방이 교계에서 오가고 있다 최근의 방언 논쟁에 대해서는 배본철, “한국 오순절 성령운동의 역사와 전망: 성령론 논제들의 발생과의 연관성”, 38-42을 참조하라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늘날의 하나님의성회 교단들은 성령세례의 첫 증거가 방언이라는 전통 오순절주의의 교리적 선언을 담대히 유지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지어야 할 신학적 논의의 절박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2 영산의 실존적 영성의 자리 필자는 이 논문의 연구과정 속에서 영산의 최근 저술이나 설교가 오순절주의 성령론보다는 대부분 실존적 영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 크게 주목하였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2009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개최된 제 58차 정기총회에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가 결성된 이후, 이 교단에서는 조용기 목사의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의 신앙을 따를 것을 표명한 점도 들 수 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 홈페이지, “총회 연혁”, (2016 3 26) 이에 따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 홈페이지의 “교단 교리”에는 성령세례라는 표현 대신 ‘성령 충만의 복음’이라 했고, 또 방언에 대한 언급은 “교단 교리” 페이지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성령 충만의 복음’도 역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이라는 큰 교리적 범주 속에 일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 홈페이지, “총회 연혁”, (2016 3 26) 그렇다면 영산이 오순절주의 성령론을 개인적으로 포기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의 영향 아래 결성된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는 “교단 교리”에 따라 오순절주의 성령론보다는 영산의 실존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교리로 따르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영산이 끼친 실존적 영성의 영향력은 비단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여의도순복음총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하나님의성회에 속한 교단들은 그동안 영산이 제시해 온 실존적 영성에 관해 오순절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진지한 재평가를 해보아야 한다 여태까지는 영산의 가르침 속에 오순절주의 성령론과 실존적 영성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던 점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또는 구분해 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영산의 실존적 영성이 그의 오순절주의 성령론의 범주 속에서 자라났다고 할 것 같으면, 이제는 삼박자 축복과 오중복음 그리고 사차원적 영성이라는 일련의 흐름을 통해 형성된 그의 실존적 영성이 오순절주의 성령론과는 별개의 위치에서 그리고 오히려 오순절주의 성령론을 훨씬 능가하는 강조점으로서 오늘날의 영산이 지닌 영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오순절주의 성령론과 그가 추구한 실존적 영성이 적절히 융합되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병존하고 있었다고 표현함이 더 낫다 ” 배본철, “영산 조용기 목사 60년 사역에 걸친 성령론에 나타난 핵심 논제 분석”, 14 그렇다면 오순절주의 성령론을 따르는 하나님의성회의 전통적 신앙과 영산의 실존적 영성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제는 이러한 연구의 과제가 하나님의성회 교단들에 속한 신학자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시기라고 본다 3 성령세례 강조의 전통 영산은 그의 사역 초기인 1960년대 말부터 1970-80년대의 성령론 논쟁 시기에 이르기까지 오순절주의 성령론의 정립과 확산을 위해 분투하였다 그리고 지난날 영산의 60년 목회사역의 최소한 전반기 이상을 힘차게 북돋우었던 것은 역시 성령세례의 능력을 강조하는 메시지였다고 본다 그것이 오늘날의 여의도순복음중앙교회를 있게 해 준 의심할 수 없는 영성의 기반이었다고 본다 이 점에 있어서 오늘날 하나님의성회에 속한 교단들이 중생과는 구분되는 성령세례의 경험을 강조함에 있어서 교단 신조상 일치된 표명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다행한 일이라고 본다 지난날 1970-80년대에는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의 신학적 우세로 인해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의 성령론과 함께 오순절주의 성령론은 그 기세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신학계에는 오순절주의 신학자들이 개혁주의 신학자들 못지않게 많이 활동하고 있다 더군다나 오늘날에는 전에 비해 웨슬리안 신학자들의 인원도 많고 또 그들의 연구 업적도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중생과 성령세례의 경험을 구분하는 노선에서라면 얼마든지 오순절주의신학자들과 웨슬리안신학자들이 함께 조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산이 1960년대 말부터 몇 십 년간에 걸쳐 전력을 다해 외치던 오순절주의 성령론의 성령세례 경험 강조의 신앙을 얼마든지 신학적으로 공고히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성회 교단들은 성령세례의 신학을 논하되, 그동안 한국교회 성령론 논쟁을 통해서 얻어진 역사의 교훈들을 통해 좀 더 체계화된 신학방법으로 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성령세례의 시기가 중생할 때냐 그 이후이냐의 문제, 성령세례인가 성령 충만인가 하는 용어상의 문제, 방언이 성령세례의 첫 증거냐 아니냐의 문제, 성령 은사의 중단성과 지속성의 문제 등, 이런 논제들은 이미 1970-80년대에 충분히 다루어왔다 종래의 논제들을 다시 들추어대면 반대 입장에서는 종래의 반박을 또 인용하게 될 것이고, 그러다보면 앞으로도 끝없는 성령론 논쟁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논제들을 그동안의 교훈으로 삼고, 새로운 차원의 접근, 즉 복음이 제시하고 있는 성령세례의 능력에 대한 논제를 향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배본철, 성령, 그 위대한 힘 (서울: 넥서스CROSS, 2013), 315 이 주제에 있어서 하나님의성회의 여러 교단들에 속한 신학자들은 적지 않은 역사적, 경험적인 연구 자료들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지난 1970-80년대에 자신을 표적으로 한 성령론 비판을 묵묵히 견디어 낸 영산의 성령론을 새롭게 공고히 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