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님의 모든것! '弼學 개론'(47) 조용필 제 4집 '난 아니야'

조용필님의 모든것! '弼學 개론'(47) 조용필 제 4집 '난 아니야'

(이 곳에 올린 글은 오빠에 관한 종 합적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구성 되 었으며 나의 의견을 덛붙여 작성된 글이므로 100프로의 정확성은 장담 할수 없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제외 하고는 최대한 정확하게 쓸려고 최 선을 다하였다 ) B면 No4 : '난 아니야' 김순곤 작사, 조용필 작곡 '보고싶은 여인아'로 성인층을 만족 시킨 후 다음 트랙으로 유년층을 위 한 울오빠의 순수 창작동요인 '난 아 니야'가 수록된다 3집의 '오빠생각' 이나 4집 B면의 '따오기' 처럼 기존 동요들을 리메이크 하셨을 만큼 동 요에도 많은 관심과 애착을 보이신 울오빠, 기존 동요곡을 리메이크 하 신것이 못내 아쉬우셨는지 결국 동 요곡까지 직접 만들어 버리신다 그 렇게 탄생한 울오빠표 순수 창작동 요 '난 아니야'는 70년대 미성 창법 을 살린 천진 난만한 보이스가 참으 로 매력적인 곡이다 울오빠의 미성 창법은 비지스나 장욱조의 경우처럼 노래 한곡을 온통 미성을 사용해 부 르시기 보다는 곡의 특성에 따라 진 성과 가성을 교차시키며 사용하셨는 데 1집의 '단발머리' 2집의 '잊기로 했네'에 이어 4집의 이곡 '난 아니야 '가 그런 경우로, 울오빠만의 창법으 로 한결 더 동요스러워 동심의 끝을 보여주며 여성?스러운 느낌까지 주 는 특징이 있다 유년층을 위한 트랙 이라지만 동심을 그리워하던 어른들 이 많았던 탓일까? 의외로 어른들도 많이 듣는 트랙이기도 하였다 특유 의 호소력을 제대로 살려 동심을 자 극하는데 처음 들어도 누구나 쉽게 마음 살랑거리는 쉬운 멜로디 진행 이다  위대한 탄생의 반주 또한 꽃밭 에서 함박웃음 짓는 아이들을 제대 로 그려준다 거기에 곡 진행이 약-중-약-강으로 각절이 구성 되어 있 어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다 '중'에 서 보이는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부분은울오빠특유의 가성을 악기처 럼 더빙시켜 화음파트로 넣어  자칫 잘못하면 동요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를 부분을 기가 막히게 처리했으 며 이 부분에서 반주간의 화음 또한 단순한 '동심'만 추구하지 않고 화음 으로 발생하는 긴장감의 유지와 해 소를 적절히 이용해 진행하는것 또 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2절 후의 '랄라라라'라는 인간악기(?)를 사용 해 마무리 짓는다 ('고추잠자리'가 떠오르는 구간이기도 하다 ) 이 곡을 단순한 멜로디의 루핑(*프로그램 속 에서 동일한 명령이나 처리를 반복 하여 실행되게 하는것 ) 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단순해 야 하는 동요의특성에 맞춘 구성이 었다고 판단된다 이곡은 이처럼 '반 주+ 멜로디+울오빠의 코러스'이 세 가지가 어우러져 밸런스가 아주 잘 맞추어진 곡이다 당시 이곡 또한 순 위 차트에 진입해 히트곡으로 자리 잡았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울오빠 께서 동요로까지 음악적 범위를 확 대하신다 '한오백년' '강원도 아리 랑' 같은 전통 민요를 弼樂으로 승 화시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 셨고 '돌아와요 부 '처럼 정통 트로 트곡을 弼樂으로 승화시켜 최고의 국민가요를 만드셨고 '창밖의 여자' '생명' 처럼 오직 弼樂에만 존재하 는 특별한 발라드로 대한민국 모든 이의 가슴을 후벼파 눈물짓게 만들 었으며 '촛불' '고추잠자리''물망초' '여와 남'' 못,꾀' 같은 오리지널 弼樂으로 고뇌에 찬 전문가들을 만족 시켜 최고의 찬사를 받으셨다 그리 고 후에는 가곡,오페라까지 弼樂 으 로 접수해 버리신다 이러니 팬층에 제한이 없는게 당연 하지 않겠는가? 울오빠께서 음악의 모든 장르를 통 달하신 분인건 세상이다 아는 사실 이지만 대중가수의 동요장르 시도는 드물기도 하였고 설령 시도했다 하 더라도 소화할수 있는 이가 과연 얼 마나 될까? 도대체 울오빠의 넓고 깊은 필락(弼樂)의 끝은 도대체 어 디일까? 그 끝이 있기는 있는걸까? (이 곡 부르시면서 율동(수화)하시 는 영상 아! 황홀하게 귀여우신 울오빠!! 그 모습을 공연장에서 꼭 한번만이 라도 보고 싶은 간절한 바 램이 있지 만 이젠 안하시겠지? 지 금 하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으시고 엄청 귀여우실텐데~ㅎ 상상만으로 도 나는 쓰 러진다 ㅎ) 35주년 공연 에서는 실 제로 어린이 합창단과 함 께 부르기도 하셨고 한때는 공연에 서 자주 부르 시는 곡 이었는데 요즘 은 듣기 힘든 곡 인듯하다 눈물나게 아쉽다 ('꽃' 이 아니라고 외치시지 만 당신은 내 마음에 '꽃'이십니다 영원히 지지않 을 위대하고 아름다 운, '꽃'이 분명 하십니다 ) '못,꾀'와 더불어 이 곡 가사 역시 김 순곤님의 작품으로 간결하면서도 서 정적인 노랫말로 맑고 깨끗한무한의 동심을 느낄수 있으며 본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끼는 최애작이라고 직접 말씀하셨을 만큼 심혈을 기우 려 만든 김순곤님의 대표 작품이다 울오빠께서 위대한 이유는 수십, 수 백가지도 더 되지만 굳이 5가지로 함축한다면 1)기타리스트 출신으로 뛰어난 연주 능력 2)시대를 뛰어넘는 선구적인 노래들 , 대중성있는 곡들 3)트로트부터 락까지 다양한 장르를 직접 소화하신 가창력 4)트로트부터 락까지 다양한 장르를 직접 작곡하신 작곡력 5)스캔들 No, Only뮤지션으로서 한길만 꾸준히 51년째 활동하시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심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콘서트는 두 말이 필요 없는 현재 진행형 최고 의 뮤지션 이시다 50년에 그치지 않고 60년 이상 당 연히 건재하실, 아마도 세계적으로 도 몇 안되는 위대한 뮤지션으로 남 으시리라 굳게 믿는 바이다 이 곡을 들으니 마음이 훈훈해지면 서 어느덧 동심이 된다 울오빠의 노 래 한곡, 한곡에는 잊지 못할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가 초 등학교때,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그 리고 갓 성인이 되었을때, 결혼하였 을때, 큰딸이 태어났을때, 두째딸이 태어났을때 슬펐을때, 기뻤을때, 외 로울때, 괴로울때, 화가났을때 그때 그때 마다 다른 상황에 그때 그 때 마 다 다른 곡들이었지만 그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나의 곁을함께 하여 때 로는 위안을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희망을 때로는 사랑을 가져 다준 아름다운 음악들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부터 나의 일부가 되어 버 렸는데 나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 른이들의 추억까지 무한으로 녹아있 을 거대한 弼樂!!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극히 평범한, 그래서 더 아름다운 우리들의 이야기 -아내가 즐겨불렀던 '난 아니야- "빨리 나와 밭에 가 그깟 텔레비 보 고 있으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방에서 나 오는 소녀의 입이 삐죽 나와 있습니 다 조금 있으면 조용필 노래가 나오 는데 아버지 때문에 못 보게 되니 속 이 상해서입니다 다른 집 아버지들 은 애들 일 많이 안 시키는데, 틈만 나면 일 시킬 궁리만 하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어떤 때는 일 안 시키는 다른 집 아저씨랑 우리 아버지를 바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 니다 밭으로 가는 소녀의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공일(휴일)날 일 하는 것도 싫지만 조용필이 노래하는 걸 볼 수 없다는게 더 싫었습니다 엄마 와 오빠는 먼저 와서 일을 하고 있었 습니다 소녀는 오빠 일하는 옆에 가 서 앉습니다 오빠는 여동생을 잘 챙 겨주었습니다 힘든 일은 오빠가 다 하고 힘들지 않은 일만 조금씩 하며 따라오라고 일러줍니다 오빠는 조 용필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학교 가 면서도 부르고, 소 먹일 풀 베러 지 게 지고 개울에 가서도 불렀습니다 소녀가 조용필을 알게 된 것도 오빠 때문입니다 밭고랑에 앉아 일하면 서도 오빠는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빠가 불러주는 조용필 노래를 들으니 속상한 마음이 풀렸습니다 오빠 곁에 앉아서 풀을 뽑던 소녀도 조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 합니다 여름 한낮에 꼬마 아가씨 꽃그늘에 숨어서 울고 있을 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맴돌아 날며 댕기 끝에 자꾸만 앉으려하네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그래, 넌 꽃이 아니야 여고시절 체육시간, 선생님은 날씨 더운 여름날이면 아이들을 학교뒤편 숲 그늘에 앉혀놓고 노래를 시켰습 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소녀보고 나가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친구들 등살에 밀려 나가 노래하면서도 소 녀는 싫지 않았습니다 하얀 손마다 꽃물 들여서 눈물자국 아직도 지우지 못해 고개 숙여 자꾸만 얼굴 감추고 작은 어깨 흔들며 울고 있더니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대목에 이르면 친구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함께 불렀습니다 그러다 장난끼 발 동한 친구들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 질 하면서 "넌 아니야 꽃이 아니야" 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며 깔깔댔습 니다 가난했던 시절 이 땅의 소녀들 은 꽃이 되기보다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일꾼이 되고 저임금을감당하며 산업 경제를 일으키는 역군이 되었 습니다 조용필의 '난 아니야'를 즐 겨 부르던 소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취업해서 모은돈의대부분은 대학 다니는 오빠에게 들어갔습니다 명 절이 되어 고향에 오면 여고시절 친 구들끼리 모일때가 있었습니다 만 나서 수다를 떨다보면 여고시절 얘 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말괄량이 친구들 얘기, 괴짜 선생님 얘기, 합 천 해인사수학여행 때 개구진 친구 들이 장난치다 수학 선생님한테 벌 받던 얘기 어쩌다 더운 여름날 체 육시간 얘기라도 나오면 친구들은 '난 아니야'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등을 떠밀었습니다 해 저물면 찬바람에 시들어버리는 그런 꽃이 싫어 난 아니야 울지 않을래 울지 않을래 나비처럼 날아가려네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꽃이 되어 다가온 그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방송 대(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한 직후였 습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오빠가 대 학을 졸업하고 반듯한 직장까지 구 하게 되니 가족들 앞에서는 떳떳하 고 뿌듯한 생각도 들었지만 뭔지 모 를 허전함이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 송대에 입학했다고 얘기했습니다 나 역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 게 대학을 졸업해서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방송대에 다니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 아내 모습이 눈에 쏙 들어 왔고, 그 사연에 가슴이 짠해졌습니 다 그래서 약속했습니다 (*댓글란에 계속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