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별 백일법문] 38일차 법문 돈오점수비판과 보조지눌 스님 비판 1968년 1월 22일](https://poortechguy.com/image/PmBRXbbsQjg.webp)
[날짜별 백일법문] 38일차 법문 돈오점수비판과 보조지눌 스님 비판 1968년 1월 22일
돈오점수는 곧 선오후수(先悟後修)입니다 여기서 돈오(頓悟)라 하는 것은 얼음이 본래 물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지만 얼음이 그대로 있고, 중생이 본래 부처인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중생 그대로임을 깨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돈오(頓悟)를 해오(解悟)라고 합니다 그러니 만치 얼음이 그대로 있듯이 망상은 그대로 있으니까, 얼음을 녹이기 위해서는 따뜻한 기운을 빌려야 하고, 망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꾸 자꾸 닦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수(漸修)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말한 육조스님의 선종 정맥에서 말하는 돈오하고는 반대입니다 선종정맥에서는 돈오(頓悟)라 하면 일체 망상이 다 끊어진 것을 말했습니다 돈오한 동시에 돈수(頓修)여서 후수(後修)가 필요 없습니다 선종정맥에서 말하는 돈오(頓悟)는 얼음이 본래 물임을 안 것만으로는 되지 않고, 얼음이 녹아서 물로 완전히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무소득(無所得)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소득(有所得)이니 제8아뢰야 무심(無心)을 물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한편 돈오점수에서 주장하는 깨달음(悟)이란 얼음이 본래 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직 얼음이 그대로 있으니, 따뜻한 기운을 빌려 얼음을 녹이듯이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망상을 다 끊어야 하니 거기에 점수가 필요하고 그래야 성불한다는 것입니다 육조의 선종정맥에서 주장하는 돈오돈수는 그런 것이 아니고 깨달음(悟)이라 하면 일체 망념이 다 끊어지고 망념이 끊어진 자체, 무심의 경계 이것도 벗어남을 말합니다 얼음이 다 녹아 물이 되어 물이라고 하는 자체도 볼 수 없는 이 구경지(究竟地)를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돈오(頓悟)라는 말만으로 겉으로 볼 때는 다 같지만, 깨달음의 내용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그래서 닦아야 될 수 있는, 점수라야 될 수 있는 이것을 사종(邪宗)이라 하고 지해종(知解宗)이라고 했지 육조스님의 정전이라고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 돈오점수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하택신회(荷澤神會)이며, 그 주장을 따르는 이가 규봉(圭峰)으로 규봉이 돈오점수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돈오점수를 교가(敎家)에서만 말한 것이라 하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조스님은 '달마문하에 구리고 펼쳐 서로 전한 것'이 돈오점수의 선(禪)이라고 선언하여 버렸으니, 이것이 큰 문제이며 육조스님의 말씀하신 선과는 정면 충돌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육조스님의 돈오돈수를 말하고 점차(漸次)가 없는 것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돈오를 해서 점수를 한다 하였으니 육조정전(六組正傳)의 선(禪)과 는 근본적으로 반대입니다 또 돈오점수를 달마의 선종이라고 말함으로써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편을 가야 하겠습니까? 결국은 병신을 따라가야 될건가 아니면 성한 사람을 따라가야 될건가, 그것은 스스로 생각해 보면 자연히 알 걸로 생각됩니다 도를 닦는 근본은 해탈이 목적이지 실제로 병 그대로 가지고 약을 먹고 붕대를 첩첩이 감고 다니면서 내가 돈오했다, 견성했다는 길을 어찌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돈오점수(頓悟漸修)사상은 교가(敎家)에서는 혹 방편적으로 용납이 되지만 조계선종 정맥에서는 절대로 용납 될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것으로 대중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해동(海東)으로 와서 보조스님은 그런 사상을 이어받게 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오점수사상은 보조스님 저술에 있어서「수심결(修心訣)」과「결사문(結社文」의 두 저술에서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결사문」은 보조스님 서른세살에 팔공산 거조암(居祖庵)에 계실 때 지은 글입니다 「수심결」은 지은 연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상적으로 봐서「결사문」이후에 된 저술은 사상의 전환이 많은데 그 전환점을 기준하여 보면「수심결」이「결사문」지을 때와 같은 보조스님 초기의 저술이라고 인정할 수 있습니다 보조스님이 서른세살에 거조암(居祖庵)에 계시면서 「결사문」을 짓고 약 십년 후인 마흔 한 살 상무주암(上無住庵)에서 「대혜어록」을 보고 '얻은 바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전에는 돈오해서 점수한다는 그 사상의 범위 안에 있었는데 상무주암으로 가서 '얻은 바가 있고' 부터는 정해(精解) 즉 지해분별을 원수와 같이 여기고 번뇌망상을 벗어나서 바로 안락하여 지해가 조금 높아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무주암에 몇 해 계시다가 송광사로 가서 한 십년 계시다 오십세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반년 전 오십두살 되시던 겨울에 완성한 책이 「절요(節要)」인데, 여기에서는 「수심결」이나 「결사문」과는 달리 사상적 전환이 있습니다 즉 「절요(節要)」에 있어서는 돈오점수(頓悟漸修)는 교종(敎宗)에 해당하는 것이지 선종(禪宗)은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요사이 우리나라의 선방을 볼 것 같으면 내가 젊은 날 행각할 때나 늙은 지금이나, 참선한다는 사람들이 보조스님의 초년에 잘못된「수심결」만 보고 자꾸 돈오점수만 주장하는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돈오점수를 순전히 선사상(禪思想)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보조스님을 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팔백년후인 지금에 돈오점수가 선종사상(禪宗思想)이라고 주장한다면 보조스님이 살아계셨어도 웃을 일입니다 거듭하는 말입니다만 규봉스님은 평생동안 교(敎)와 선(禪)을 완전히 구별하지 못하고 돈오점수를 끝끝내 달마선종이라고 고집해서 중대한 큰 과오를 범하고 말았지만, 보조스님은 말년에 가서 돈오점수가 선(禪)이 아님을 밝혔으니 허물이 적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절요(節要)」에 있어서도 자가당착의 모순점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보조스님 자신이 달마스님의 깊은 뜻이 돈오점수에 있다고 해놓고, 다시 그 뒤에서 '교외별전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敎外別傳者 不在此限]'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달마스님이 전한 것 외의 교외별전이 따로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달마가 두 사람이 있어야 됩니다 돈오점수를 전한 달마가 있고, 교외별전을 전한 달마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상으로 볼 때 달마가 두 사람 있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하면 으레히 달마선종을 말하는 것이고, 달마(達磨)란 한 사람뿐이지 두 사람이 없으니 그러면 이 문제 는 분명히 자기 모순입니다 이런 모순이 「절요」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수심결」과 「결사문」에도 있어서 달마선종을 혼동시켜 놓는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수심결」에서 '먼저 깨치고 뒤에 닦으니 이것이 최상승선이며 달마문하에서 구르고 펴 서로 전한 것이다' 하고, 「정혜결사문」에서는 '지금 논한 바는 최상승선이니 조종문하에 있어서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에서도 인용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조스님은 앞의 말을 끌어 놓고서 오직 돈오점수의 하택스님을 따라갈 것이지 마조스님이나 우두스님같은 분을 따라가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참 곤란한 말입니다 마조스님은 조계정전(曹溪正傳)으로써 천하가 다 공인하는 사실인데 자기 입으로 하택은 지해종사라 하고 조계적자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우리가 누구를 따라가야 되겠느냐 하면 지해종인 하택과 규봉을 따라가야 된다 하니 이것도 모순이 안될래야 안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냉정히 비판적 입장에 서서 진실을 보아야 합니다 #성철스님 #백일법문 #돈오점수비판 * 백련불교문화재단 * 성철선사상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