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백일법문 177] 돈오점수비판 5 선종정맥은 선오후수를 인정 않는다 1968년 1월 22일 법문](https://poortechguy.com/image/XyK26T_jcp4.webp)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177] 돈오점수비판 5 선종정맥은 선오후수를 인정 않는다 1968년 1월 22일 법문
돈오점수는 곧 선오후수(先悟後修)입니다 여기서 돈오(頓悟)라 하는 것은 얼음이 본래 물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지만 얼음이 그대로 있고, 중생이 본래 부처인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중생 그대로임을 깨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돈오(頓悟)를 해오(解悟)라고 합니다 그러니 만치 얼음이 그대로 있듯이 망상은 그대로 있으니까, 얼음을 녹이기 위해서는 따뜻한 기운을 빌려야 하고, 망상을 없애기 위해서는 자꾸 자꾸 닦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수(漸修)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말한 육조스님의 선종 정맥에서 말하는 돈오하고는 반대입니다 선종정맥에서는 돈오(頓悟)라 하면 일체 망상이 다 끊어진 것을 말했습니다 돈오한 동시에 돈수(頓修)여서 후수(後修)가 필요 없습니다 선종정맥에서 말하는 돈오(頓悟)는 얼음이 본래 물임을 안 것만으로는 되지 않고, 얼음이 녹아서 물로 완전히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무소득(無所得)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소득(有所得)이니 제8아뢰야 무심(無心)을 물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한편 돈오점수에서 주장하는 깨달음(悟)이란 얼음이 본래 물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아직 얼음이 그대로 있으니, 따뜻한 기운을 빌려 얼음을 녹이듯이 공부를 부지런히 해서 망상을 다 끊어야 하니 거기에 점수가 필요하고 그래야 성불한다는 것입니다 육조의 선종정맥에서 주장하는 돈오돈수는 그런 것이 아니고 깨달음(悟)이라 하면 일체 망념이 다 끊어지고 망념이 끊어진 자체, 무심의 경계 이것도 벗어남을 말합니다 얼음이 다 녹아 물이 되어 물이라고 하는 자체도 볼 수 없는 이 구경지(究竟地)를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돈오(頓悟)라는 말만으로 겉으로 볼 때는 다 같지만, 깨달음의 내용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틀립니다 그래서 닦아야 될 수 있는, 점수라야 될 수 있는 이것을 사종(邪宗)이라 하고 지해종(知解宗)이라고 했지 육조스님의 정전이라고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 돈오점수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하택신회(荷澤神會)이며, 그 주장을 따르는 이가 규봉(圭峰)으로 규봉이 돈오점수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규봉이 먼저 깨치고 뒤에 닦는다는 뜻을 총괄하여 결정하였다 자성이 원래 번뇌가 없고 무루지의 성품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 부처와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단박에 깨달아(頓悟) 이것에 의지하여 닦는 것을 최상승선이라 하며 또한 여래청정선이라 한다 만약 능히 생각에 닦아 익히면 자연히 점점 백천삼매를 얻는다 달마문하에 구르고 펼쳐 서로 전한 것이 이 선이다 곧 돈오점수의 뜻은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하나가 없어도 옳지 않다 圭峰이 摠判先悟後修之義 云頓悟此性이 元無煩惱하며 無漏智性이 本自具足하야 與佛無殊하나니 依此而修者는 是名最上乘禪이며 亦名如來淸淨禪也라 若能念念修習하면 自然漸得百千三昧하나니 達磨門下에 轉展相傳者는 是此禪也라 하니 則頓悟漸修之義는 如車二輪하야 闕一不可니라 [修心訣] 방금 앞에서도 말했지만 돈오점수를 교가(敎家)에서만 말한 것이라 하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조스님은 '달마문하에 구리고 펼쳐 서로 전한 것'이 돈오점수의 선(禪)이라고 선언하여 버렸으니, 이것이 큰 문제이며 육조스님의 말씀하신 선과는 정면 충돌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육조스님의 돈오돈수를 말하고 점차(漸次)가 없는 것을 말했는데, 여기서는 돈오를 해서 점수를 한다 하였으니 육조정전(六組正傳)의 선(禪)과 는 근본적으로 반대입니다 또 돈오점수를 달마의 선종이라고 말함으로써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성철스님 #백일법문 #돈오점수비판 [성철스님의 백일법문 177] 돈오점수비판 5 선종정맥은 선오후수를 인정 않는다 1968년 1월 22일 법문 * 백련불교문화재단 * 성철선사상연구원